<피플 인 더 뉴스>생기원 주덕영원장

 제6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으로 주덕영 박사가 선임됐다는 발표가 나왔을 때 가장 환영한 사람들은 바로 생기원 직원들이었다.

 경기고·서울대 기계공학과·조지워싱턴대 경영행정대학원 경영석사·중앙대 마케팅박사·한국산업은행·기술고시 합격·산자부(상공부) 요직과 기술표준원장.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이력과 능력이 직원들의 마음을 끈 것은 아니다. 원장의 능력에 앞서 직원들이 드러나게 그를 반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주 원장은 생기원 설립 직후인 지난 89년부터 2년간 생기원 기술관리본부장을 역임했다. 원장으로 돌아온 그를 반길 수 있는 것은 물론 10년 전의 인연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에 가능한 일일 터. 당시 주덕영 기술관리본부장과 함께 근무한 직원들은 한결같이 ‘합리성’과 ‘명료함’으로 그를 기억한다.

 거기에 더해 검소함과 후덕한 품성을 거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기술표준원장 시절, 기관장들 모임이라도 있는 날이면 위풍당당한 대형 승용차들 가운데 구식 중형차 한 대가 유독 선명했다.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그 차에서 내리는 주덕영 원장의 당당한 모습은 생기원 직원들에게 이미 신화가 된 지 오래다.

 떠난 지 10년. 그런 그가 강줄기를 바꾸고 산세를 변모시킨다는 긴 세월 동안 산업기술정책 수립과 실천의 최일선에서 혜안을 키우고 회귀했으니 크게 반길 법도 하다. 주 원장은 지난 7일 생기원 천안 본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직원들의 그 같은 기대와 환영에 충실히 답했다.

 “10년 안에 생기원을 세계 10위권에 꼽히는 연구소로 키우겠습니다. 지난 10년간 이룩한 발전을 돌이켜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를 위해 연구팀에 최대한 힘을 실을 작정입니다. 연구소는 가장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공간이 돼야 합니다. 세계는 산업자본주의에서 문화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고, 모든 영역에서 콘텐츠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콘텐츠는 바로 문화입니다. 우리 연구원들이 창의적인 환경에서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생기원은 산업 발전과 더불어 많은 변천 과정을 거쳤다. 특히 기술평가·인력양성 등 주력업무가 신생기관으로 이관되면서 그 위상이 다소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생기원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제고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 주 원장이 이끄는 생기원은 ‘중소기업을 키우는 큰 연구원’을 지향한다.

 국내 유일의 중소기업 전문연구소인 생기원은 대기업 위주로 진행돼온 과거 산업정책의 영향으로 그 역할이 매우 축소됐다. 사실상 전체 기업의 99.7%, 276만9000개에 이르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에 대한 갈증을 온전히 생기원만의 노력으로 해갈시키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AN화이트헤드는 일찍이 ‘위대한 사회란 중소기업을 하는 사업가들이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사회’라고 못박은 바 있습니다. 중소기업인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으로 충일할 수 있으려면 산업시스템 자체가 중소기업이라는 엔진의 힘으로 가동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중소기업을 위한 구심체의 존재가 빠질 수 없지요.”

 새삼 생기원의 역할과 신임 원장의 능력에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도 바로 우리 경제가 이 같은 과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총량규모는 세계 8위입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비율은 7위 정도죠. 반면 실제 과학기술 경쟁력에 있어서는 22위, 국가 전체의 경쟁력은 28위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연구 효율성이 낮은 탓이죠. 하지만 기술개발 실용화 비율이 70%를 웃도는 생기원은 경쟁력 면에서 굉장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다른 연구기관들이 벤치마킹할 수 있는 최상급 연구원으로 키울 생각입니다.”

 호언장담만은 아니다. 주 원장은 ‘위대한 사회’로 이르기 위한 노선 탐색과 답사를 이미 끝낸 상태다. 남은 것은 이제 그 길에 닿기 위한 전진뿐이라고 주 원장은 말한다.

 “문제는 규모가 아니라 효율입니다. 공업화를 향한 맹렬한 질주를 시작한 60년대, 최빈국으로 출발한 우리나라는 최단기간 내 선진권에 진입한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고속성장은 옛 영화로만 남게 될 겁니다.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대기업들이 체격을 줄여 체질을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주력 분야에 집중하는 대신 나머지는 과감하게 아웃소싱하는 거죠. 그 고용은 벤처·중소기업이 흡수하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제조부문을 아웃소싱으로 대체한 대기업들이 주력해야 할 대목은 마케팅과 부가서비스·업그레이드 등의 서비스 분야. 주 원장은 그 좋은 예를 세계적인 냉방업체 ‘캐리어’에서 찾는다. 이 회사는 아웃소싱으로 제조한 에어컨을 소비자에게 무료설치해주고, 이윤은 토털서비스를 통해 얻는다. 습도·온도 조절에서부터 공기정화에 이르기까지 냉방효율을 관리해주는 것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대기업은 핵심역량을 키우고 중소·벤처기업은 나머지 부분을 아웃소싱해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그 어간에 기술개발이 놓여 있는데 지금까지 고수해오던 연구 개발 방식도 달라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케팅·부가서비스·업그레이드를 포함하는 연구개발이 돼야 하는 거죠. 앞으로 생기원은 철저히 중소기업의 니즈(needs)에 부응하는 복합연구체제를 지향할 계획입니다. 하나의 프로젝트는 분야를 막론하고 전자·소프트웨어·마케팅·부가서비스 등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결합해 개발하는 연구 방식을 정착시켜 나갈 겁니다.”

 내용을 담기 위한 큰 틀도 짜뒀다. 행정직은 소수정예로 구성하고 가능한 한 많은 직원을 연구팀에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복합적인 연구를 지향하는 만큼 각 분야에 필요한 전문가들은 위촉직으로 뽑아 결합과 해체가 자유로운 탄성 있는 조직을 구성할 계획이다.

 조직정비가 끝나는 대로 생기원은 생산기술 개발·지원에서 마케팅·실용화·기업화까지를 맞춤형으로 해결하는 전문연구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동을 걸게 된다. 그것이 바로 ‘생기원에 가면 실용화·기업화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을 뿌리내리게 하는 첫 파종이 될 것으로 주 원장은 믿고 있다.

 그런 구상에 신뢰가 실리는 이유는 30여년 공직 생활 동안 그가 보여준 알 굵은 결실 때문일 것이다. 상공부 기계공업국장 시절 산업별 육성 계획을 최초로 수립한 것도 그였고, 산업기술국장 재직 당시 기술개발 인프라에 관한 법안을 처음 마련한 것도 바로 그였다.

 주 원장은 틈만 나면 줄을 쳐가며 베스트셀러들을 챙기는 것이 습관화돼 있다. 최근 가장 감명 깊었던 책으로는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을 꼽는다. 특히 ‘소유로부터 접속으로의 전환’이라는 흐름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는 필요한 기술력을 중소기업들이 ‘접속’을 통해 생기원으로부터 빌려 쓰고 이들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가장 이상적인 생기원의 역할로 보는 주 원장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가훈을 묻는 질문에 서슴없이 ‘가정은 지상의 천국’이라고 말하는 주 원장에게는 아들만 셋이 있다.

 “두 아들이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소리를 듣고 이유를 물은 적이 있어요. 어려서부터 공무원인 아버지가 항상 신명나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고 자랑스러웠다면서 그것이 공무원의 길을 생각하게 된 동기가 됐다더군요.”

 공직자로서 주 원장의 마음결이 어떠했는지를 쉬 만져볼 수 있는 대목이다. 30년 공직생활을 마감한 그는 이제 10년 전에 떠났던 곳으로 돌아와 그곳의 사령탑으로서 향후 10년을 설계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주 원장이 설계하는 것은 ‘중소기업인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위대한 사회’인지도 모를 일이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약력>

 △44년 경남 거창 출생 △62년 경기고 졸업 △서울대 공과대학 기계공학과 졸업 △66∼74년 한국산업은행 기술부 △73년 기술고시 합격 △75∼77년 상공자원부 기술사무관 △78∼89년 상공부 산업진흥·산업기계 과장 △79년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82년 중앙대학교 경영학 박사 △92년 고속철도건설공단차량본부 본부장 △93년 상공자원부 기계공업국 국장 △94년 상공자원부 산업기술국 국장 △95∼98년 주미한국대사관 상무참사관 △99∼2001년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원장 △99년 기술고시동지회 회장 △2001년 7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취임 △가족:부인 박성희씨와 3남 △취미:수영·테니스·골프·독서 △혈액형:B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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