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직북 충격, IT주 실적악화 악령 되살아나나

 

 미국의 보고서 하나가 증시를 암울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연방준비위원회(FRB)는 8일(현지시각) 경기동향보고서인 베이지북(Beige Book)에서 ‘제조업부문의 둔화가 미국의 다른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금리인하 효과로 하반기부터 미국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한 FRB 스스로가 경기전망을 어둡게 가져간 것이다.

 이 보고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정보기술(IT)주였다. 올 초부터 IT주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던 실적악화의 악령이 다시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2분기 어닝시즌(Earning Season)을 끝마치면서 하반기부터 금리인하 효과 등으로 IT업체들이 그동안 실적부진에서 벗어나 서서히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실적회복에 대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베이지북은 7일(현지시각) 어두운 실적전망을 발표했던 시스코시스템스의 비관론을 전 IT업종에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날 1%대의 하락에 머물렀던 시스코시스템스는 6.65% 떨어져 하락폭을 키웠고 주니퍼네트웍스(-9.4%), 노텔(-6.5%), 퀄컴(-3.7%) 등 통신장비업체들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졌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전날보다 4.91% 하락한 것을 비롯해 나스닥시장의 컴퓨터지수(-3.81%), 텔레콤지수(-2.82%), 바이오테크지수(-3.06%) 등 IT 관련 지수들이 큰 폭으로 하락하며 기술주 비관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스닥지수도 기술주의 하락으로 전날보다 61.43(3.03%) 떨어진 1966.33으로 마감하며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는 2000선이 붕괴됐다. 나스닥지수가 2000선 이하로 떨어진 것은 지난 7월 24일 이후 처음이다.

 국내 기술주들도 맥없이 무너졌다.

 실적호전과 낙폭과대로 상승세를 이어가던 통신서비스주는 9일 미국발 악재에 그 기세가 꺾였다. SK텔레콤이 전날보다 9000원(4.02%) 하락한 21만5000원으로 장을 마감했고 한국통신(-2.80%), KTF(-3.81%), LG텔레콤(-4.92%) 등도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반도체 바닥 논쟁으로 상승과 하락을 거듭했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도 각각 3.68%, 5.26% 하락했다. 거래소시장은 외국인들이 전기·전자업종주식을 1090억원 순매도하며 11.48포인트 떨어진 549.67로 마감했다. 코스닥시장도 시스코시스템스 등 기술주 실적악화 전망이 부각되며 7일동안 지켜오던 70선이 힘없이 붕괴됐다.

 맹영제 삼성증권 연구원은 “베이지북의 어두운 경기전망은 실적부진에 고전하고 있는 기술주에 경기회복 지연이라는 부담을 가중시켰다”며 “이는 최근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IT주의 움직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정훈석 동원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그나마 호조를 보이며 미국 경제를 지탱했던 소비지출이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에 증시가 타격을 받았다”며 “IT업체들의 재고조정이 길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둔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FRB의 발표가 나와 IT주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고 말했다.

  <김익종기자 ij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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