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의 원격지 백업시스템 구축사업이 양극현상을 보이고 있다.
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동원증권의 전산사고 이후 원격지 백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몇몇 증권사는 구축 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은 아직 검토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이러한 현상은 회사의 매출이나 IT예산 규모와는 무관한 양상을 보여 백업센터 구축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가 약하다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로컬 백업과는 별도로 원격지에 백업시스템을 구성하는 사이트 백업체제를 마련해 놓은 업체는 한국증권전산의 분당 전산센터를 이용하고 있는 신영증권. 하지만 지난해말부터 사이트 백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재 대신증권, 대우증권, 삼성증권, 동양증권 등이 완성을 앞두고 있다.
대신증권은 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주전산센터의 장애에 대비하기 위해 52억원을 들여 서울 여의도 본사 건물에 미러링 방식의 백업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동양증권 역시 서울 오금동 주전산센터와는 달리 70억원의 자금을 들여 여의도 본사에 백업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대우증권도 과천 전산센터와는 달리 여의도 본사 건물에 별도의 DR(Disaster Recovery)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삼성증권도 내년 2월까지 미러링 방식의 백업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계획 아래 현재 장소를 물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증권사와 달리 대부분 증권사들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업계 선두그룹에 속하는 현대증권, LG투자증권도 사이트 백업시스템 작업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다.
현대증권은 아직 백업솔루션에 대한 검토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단계이며 LG증권도 전산센터를 임대하거나 여의도 본사 건물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경영진이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아직 시행일정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전산사고를 경험한 바 있는 동원증권도 올초까지는 사업자 선정작업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지만 최근 사업자 선정을 보류하고 재검토 쪽으로 한발 물러섰으며, 이외의 다른 증권사들도 대부분 검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지난해말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사고 불감증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지난해 동원증권 사고 이후 금융감독원에서 백업센터를 의무화하려 했을 때만도 많은 증권사들이 준비에 나섰지만 금감원이 이를 규정화하는 데 주춤하는 사이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신증권 등 초기에 과감하게 구축에 나선 업체들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투자시기를 놓친 업체들은 최근의 증시불황과 맞물려 선뜻 구축사업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진이 백업센터를 일종의 보험으로 인식해 투자를 꺼린다”며 “장세가 회복되지 않는 한 당분간은 백업센터 구축에 나서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금감원이 하루빨리 백업센터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고 증권사 경영진도 기존의 시각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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