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양대 정유사의 석유 기업간(B2B) 시장 참여를 놓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시장 우위권 남용 등에 대한 직권 조사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왜 굴지의 정유사들이 거래 규모도 미미한 석유 전자상거래(EC) 시장에 이 같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참여하려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본지 7월 28일자 2면 참조
◇참여 배경=무엇보다 최근의 시장 상황이 정유산업의 한계 봉착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전형적인 중후장대 산업인 정유업은 증권가에서 대표적인 ‘언더웨이트(underweight·투자비중 축소)’사업으로 취급될 만큼 뚜렷한 사양화를 보이고 있다.
지난 산업고도기에 실시된 과도한 설비투자로 전반적 공급과잉 상태인 국내 정유 시장은 전체 생산의 30%를 수출해야만 하는 구조적 취약점을 안고 있다. 더욱이 국내 석유 소비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2∼3%대의 저성장이 예상돼 과잉생산은 큰 문제로 지적된다. 여기에 타이거오일·삼성물산 등 국내외 수입정유 취급업체들이 값싼 유가를 무기로 수입유를 국내에 들여오고 있어 내수시장 잠식은 시간 문제라는 게 관련 업계의 분석이다.
굿모닝증권 이광훈 연구원은 “특히 내달부터 주유소 폴사인제(상표 표시)가 완전 폐지되면 주유소 중심의 국내 석유유통 시장에 대한 정유사의 통제력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돼 정유업계의 총체적 난국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석유 전자상거래 시장의 이면=우리나라 석유 시장은 연간 30조원 규모. 이중 5%인 1조5000억원 정도를 EC 가능 물량으로 관련 업계는 보고 있다. 따라서 국내 정유 시장이 아무리 한계에 봉착했다 해도 정유사의 EC 시장 진출 강행에 대한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특히 우리 정유산업의 특성상 독과점 형태의 비교적 ‘안락한’ 사업을 구가해온 대형 정유사들의 입장에서는 애써 이 시장에 뛰어들 이유가 없어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유사들이 석유 EC 시장의 거래물량만을 보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유사 입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석유 EC 시장의 활성화로 인한 유통시장의 통제력 상실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각 석유 전문 e마켓을 통해 정유 현물가격이 속속 공개되면서 최근 정유사들은 환율상승, 교육세 인상 등 각종 인상 요인을 과거와 같이 유가에 즉시 반영하지는 못하고 오히려 유가인하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 더욱이 유통시장의 통제력 상실은 각 정유사들이 최근 들어 가장 공들이고 있는 주유 고객 대상 카드사업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현재 전국 1만1000여개의 주유소 중 SK(엔크린·오케이케쉬백)와 LG정유(보너스카드)의 직영 주유소는 각각 800여개와 600여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자영 주유소는 현재 이들 정유사 상표를 부착하고 있더라도 내달부터는 복수폴제 시행으로 취급 유류의 선택이 자유로워진다.
따라서 브랜드 범용성이 강한 EC업체가 일반 신용카드사와 손잡고 주유카드사업에 뛰어들 경우 SK와 LG의 주유카드는 자사 직영점에서만 통용되는 ‘그들만의 카드’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결국 이를 통해 고객DB 마케팅·오토애프터사업·금융업 진출 등 각종 신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정유사들의 사업계획도 전면수정이 불가피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정부 및 관련 업계의 우려와 반대 속에서도 정유사들이 석유 EC 시장 진출을 강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형 정유사들의 이 같은 무리수가 ‘묘수’가 될지 ‘자충수’가 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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