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건잠머리컴퓨터 전무 ycchoi@gunzam.co.kr
디지털 세트톱박스(위성방송수신기)가 반도체, 이동전화기에 이어 또 하나의 수출효자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95년 SA, 디렉tv가 상업방송을 시작한 이래로 해마다 폭발적인 신장세를 거듭한 전세계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은 가트너 그룹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2800만대 규모를 형성했고 올해는 35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약 7조원에 달하는 거대한 시장이다. 국내의 경우 지난 94년부터 국내 대기업들에서 개발팀을 구성하여 개발을 시작한 이래 지난해는 99년 대비 수출규모가 180% 성장, 6000억원에 달했으며 올해는 약 1조원에 육박한다.
이같은 수치는 반도체나 기타 가전제품과 비교할 때 액수면에서는 적지만 디지털 세트톱박스 분야가 매년 30% 이상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수출기여도는 점차 높아지리라 예상된다. 이를 위해선 유럽과 중동 지역의 리테일 마켓에 치우쳐 있는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고기능 제품을 개발해 미주와 유럽 및 아시아 등지의 방송사업자 시장 개척에 성공해야 함은 물론이다.
아날로그 위성수신기 시절부터 확보한 기본 위성수신기 개발 관련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에는 대기업 출신 인력들이 주축이 된 80여개 업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중에는 이미 상당한 고급기술을 확보하고 100여명에 이르는 연구진을 보유, 자사브랜드로 세계 유수 업체와 경쟁을 해가고 있는 상위 업체도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을 추격하는 몇몇 중견 업체, 또 불과 몇 명의 엔지니어로 기본 모델(Free to Air)과 CI모델들을 개발해 유통 시장에서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는 수십개 업체가 난립해 있다. 기본모델의 경우 대만산, 중국산들이 서서히 한국업체의 경쟁상대로 부상하면서 국내업체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으며 이미 일부 중견 업체는 부도가 나거나 이 사업부문을 정리하고 있다. 이는 곧 이들 후발 중소 회사의 대량 도산으로까지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최근에는 중국업체나 몇몇 외국 업체가 홍콩을 통해 국내 개발인원을 고용하거나 용역개발을 통해 기술을 이전해 가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지금 디지털 세트톱박스 시장의 모습을 보면 90년대 초반 카 오디오 시장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아 섬뜩한 느낌이 든다. 그 당시에도 업체들이 자사브랜드를 키워 나가지 못하고 주문자상표에 의지해 유통시장 공략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돈이 된다는 소문에 수십개의 업체가 난립하여 경쟁하면서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상당수 엔지니어가 국내보다 대우가 좋은 홍콩 등지의 경쟁사로 자리를 옮겨 제품을 설계해 주는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수준의 기술에 우리보다 생산비가 저렴한 중국산이 한국제품과 경쟁을 했으니 그 결과는 어떠했겠는가. 이제 국내에서는 국내자동차회사와 직접 연관된 회사들을 포함하여 몇 개의 업체들만이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고 수십 개의 회사가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디지털 세트톱박스 업계의 많은 경영진들이 이러한 문제를 알고 있으나 실현 가능한 대안을 내놓거나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자신들의 회사는 기술력이나 혹은 각별한 영업력으로 이 난국을 피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량도산을 막을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군소단위로 흩어진 업체가 합쳐 힘을 모으는 것이다. 몇 개 회사 단위로 전략적제휴·합병·인수 등 무엇이 되든지 연구개발인원을 모아 일개 팀이 최소 40∼50명 정도의 인원이 될 수 있도록 키우고 통합 영업을 통해서 비용은 줄이고 영업이익을 극대화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여러 이해 당사자의 이익 때문에 쉽지는 않은 일이다. 각 사의 경영진이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합병이나 인수가 어렵다면 이미 몇몇 회사가 추진 중이듯이 경영진간에 확실한 신뢰와 지원을 바탕으로 주식을 교환하는 전략적 제휴만이라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아무쪼록 이 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기업이 다함께 성공을 거두고 한국을 차세대 디지털 영상시장의 최강국으로서 전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킬 수 있도록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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