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미래, 찰스 그랜섬 지음, 장호연 옮김, 미래와 창 펴냄
역사분석가들에 의하면 문화는 약 80년을 주기로 네 가지 변화가 순차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절정기-자각기-해체기-공황기’가 그것이며 각각은 약 20년이 걸린다.
80년부터 2000년까지는 ‘해체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염려와 불안이 세상을 지배해 가정폭력, 학교폭력이 난무하는 등 기존 제도와 가치관이 흔들리는 사회적 격변기였다. 격렬한 노조·학생운동 등 불안정한 사회현상과 IMF체제. 한국경제도 뒤돌아보면 하나의 역사적 순환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다가오는 20년은 ‘공황기’로서 새 질서와 사회구조가 탄생해 세계관과 인간관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다.
저자는 이러한 배경하에서 정보사회의 도래를 예고한다. 우리 사회에 나타날 직업적 변화를 기술발전의 결과로 진단하고 그 미래를 분석하고 있다.
그럼 구체적으로 인터넷과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미래의 기술이 개인이나 조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우선 근로조직이 ‘팀 속의 팀’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인터넷 사용으로 시간 개념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개념에서 반복적이고 연속적인 순환형 개념으로 옮겨간다. 하나가 끝나야 다른 것이 시작되는 업무처리방식이 동시다발적으로 순서없이 일어난다.
저자는 이를 스포츠 경기에 비유한다. 80년대 말의 ‘재택근무시기’, 90년대 중반 ‘가상현실의 시기’, 2000년대 초 ‘할리우드의 시기’로 구분해 각각 야구·미식축구·올림픽 농구에 대응시킨다. 야구는 투수·타자·야수의 위치가 고정돼 각자 독립적인 자기 역할을 한다. 고전적인 근로 조직인 셈이다. 미식축구는 공격수와 수비수 간의 조화된 행동이 강조되는 스포츠다. 네트워크환경하에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주변에 두고 필요에 따라 프로젝트 관련자들이 동시에 접근해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HP사나 선사가 이런 조직과 업무형태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올림픽 농구는 4년에 한 번 있는 일회성 행사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공격과 수비의 구별없이 경기를 운영한다. 이것은 할리우드에 있는 드림웍스사와 비슷하다. 수백개의 기업과 개인이 대본을 중심으로 모여서 일을 하게 되며 독립적인 배우와 프로덕션이 구성원이 된다. 그리고 한 영화 제작이 끝나게 되면 조직이 해체돼 버린다.
사업 활동의 속도가 빨라지는 가운데 하룻밤 만에 시장이 출현하고 사라짐에 따라 계층적이고 형식적인 조직은 사라지고 목표 시장이나 프로젝트에 따라 상호연결된 전문가들이 일시적으로 모여 함께 일하는 소규모 네트워크 업무처리방식이다.
두 번째는 개인에 대한 영향이다.
감정폭발이나 분노에 의한 자제력 상실은 세상의 빠른 변화의 결과로 생겨난 산업시대의 마지막 유산이다. 이것은 직장에서 개인적 감정을 용납하지 않는 비인간화에 기인한 것이며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두려움과 불확실성, 의구심을 만들어낸다. 결국 사람들은 유대감과 안정감을 갈망하게 된다. 새 시대의 우리 삶은 감성적이고 탈 개인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시대를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야 하는가.
먼저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다른 구성원이 다른 형태의 정보처리방식을 취하거나 다른 방식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할 때 갈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공간을 넘는 상호작용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인터넷 시대이니 만큼 갈등을 해소해주는 중재자로 대화방, 게시판의 조정자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에 대한 동기 부여가 확실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즐겨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세 번째는 공동체에 대한 영향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게 되면 새로운 사회규범을 만들어 생활하게 된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나고 있다. 과거 산업사회 공동체가 동창회, 군대 동기회, 지역협의회 등 혈연·학연·지연에 기반하고 있다면 새 공동체는 게시판, 동호회클럽, 사용자그룹 등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즉 인터넷시대에는 느낌과 생각이 같은 감성적 공동체가 탄생한다.
직장·개인·공동체 모두가 새 시대를 맡는 변화의 소용돌이에 들어서 있다.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문화를 바꾸고 있다.
<정정화 한양대 교수 jchong@e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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