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휴맥스 변대규 사장

 디지털 세트톱박스 제조업체인 휴맥스에 세계의 시선이 꽂혔다. 변대규 사장(41)이 비즈니스위크 아시아판 최근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것이다.

 ‘아시아의 스타(The Stars of Asia)’이자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50인의 리더(50 Leaders at the Forefront of Change)’ 중 하나다. 고건 서울시장, 임영학 삼성그룹 부사장, 문홍집 대신증권 전무, 윌프레드 호리 제일은행장,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등과 함께.

 비즈니스위크는 휴맥스의 눈부신 성공이 바로 변 사장의 리더십에 크게 기인한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전망이 불투명한 현재의 상황에서 혜안을 갖고 시장을 이끄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아시아의 스타라구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휴맥스는 아직 충분히 역량있는 회사로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성공에는 어쩌면 운도 많이 작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지요.”

 의례적인 축하 인사를 건넨 기자가 오히려 겸연쩍었다. 하지만 그다웠다. 쓸데없는 격식이나 허례를 싫어하고 지나친 찬사를 경계하는 것.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는 합리성과 냉철함이 풍겼다.

 그러나 누가 봐도 휴맥스의 성공은 빛을 발한다. 기업의 성공은 뭐니뭐니해도 숫자가 말해주는 것. 지난 한 해에만 1억달러가 넘는 수출 실적을 거뒀다. 성장 속도도 눈부시다. 매출증가율 163.6%, 영업이익 증가율 506.1%, 경상이익 증가율 279.8%. 전체 직원 180명의 1인당 매출액이 거의 8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아시아의 장기침체 원인을 리더십의 부재에서 찾는 그들이고 보면 변 사장은 확실히 눈에 띄는 보물이다. 언젠가는 다국적기업의 CEO로 모시려는 손길이 뻗치지 않을까. 벤처 사장들의 장탄식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운 눈길과 함께.

 “89년 대학 후배 6명과 건인시스템을 창업할 당시 우리는 어린애들에 가까웠습니다. 대학에서 연구활동만 하던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사업에 대해 뭘 알았겠어요. 그후 5년은 좌충우돌의 시기였습니다. 흔한 말로 맨땅에 헤딩한 거지요.”

 변 사장은 휴맥스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특히 가정용 노래반주기·VCD플레이어·DVD플레이어 등을 모두 접고 세트톱박스에 집중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휴맥스가 가장 잘한 일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한 분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자고 결정한 것입니다. 5년여의 부침끝에 디지털가전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가 그것밖에 없다고 판단한 거죠. 첫번째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다음은 바로 현지 시장에 직접 간 겁니다. 한국에 앉아서 세계 시장이 어뗗게 돌아가는지 압니까. 인터넷이 있다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한쪽 눈은 감고 사업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물론 밖으로 나가기만 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닙니다. 정보를 정확히 해석하는 능력이 있어야지요. 프로 9단과 아마 5단이 읽는 바둑판은 분명 다르지 않겠어요.”

 현재 휴맥스는 영국·독일·중동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으며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공장도 세웠다. 지난해에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삼성전자와 함께 크로스디지털이라는 합작법인까지 만들었다. 사업 초반 여느 중소벤처와 마찬가지로 대기업과 해외 브랜드에 의지했지만 현지에서 직접 두 눈으로 시장을 확인하지 않은 탓에 시장을 오판하는 일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직접 진출해야만 시장의 트렌드를 빨리 읽고 선점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현재 휴맥스가 유럽 디지털 위성방송수신기 시장에서 60%가 넘는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지만 변 사장은 지금까지는 연습게임일 뿐이었다고 말한다.

 “전세계 세트톱박스 시장에서 일반 유통시장은 전체의 10%에 불과합니다. 진짜 시장은 방송사업자 구매 시장이지요. 그동안도 힘들었지만 본게임은 이제부터입니다. 이제부터는 세계 굴지의 전자기업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그동안 쌓아온 것은 게임에 참여할 수 있는 출입증을 받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현재의 성공은 시장경쟁도 느슨하고 운도 따랐던 탓이 컸습니다. 이제부터는 진짜 역량이 없으면 이기지 못합니다.”

 현재 휴맥스는 기로에 서 있다. 도약하느냐 여기서 멈추느냐의 갈림길이다. 그가 본무대라고 말하는 미국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을까. 출입증은 얻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는 2∼3년 내 결론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모든 역량을 쏟을 각오가 돼 있다.

 “지난 80년부터 지금까지 시가총액 5000억원이 넘는 국내 기업 중에서 창업된 회사가 있나 살펴봤습니다. 기업간 합병을 통해 탄생된 하나로통신을 제외하고는 눈씻고 찾아도 없더군요. 단시간에 성공한 기업은 많지만 지속시키기는 어려운 것이죠. 휴맥스의 미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현재의 성공에 자족하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거죠.”

 그는 요즘 기업이 성장하면서 안게 되는 여러 가지 고민에 쌓여 있다. 조직관리의 어려움이 제일 큰 고민이다. 200여명에 육박하는 직원수, 연구인력의 거대화, 과거의 치열함과 열성, 팀워크가 느슨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등.

 “1년 새 직원이 두 배가 됐습니다. 이젠 조직이 옛날같지 않아요. 표정만 봐도 마음을 읽을 수 있던 때는 지난 겁니다. 유명세를 타면서 이런 저런 모임에 얼굴을 내밀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후배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사장이 밖으로만 돌고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 조직이 튼튼히 결속될 수 있겠어요.”

 그는 직원들이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항상 후배들이라고 말한다. 선배로서의 자리와 역할을 늘 의식한다는 거다. 꼭 집안 단속하는 큰형이나 아버지같다. 허황된 꿈이나 명성을 좇는 헛껍데기 벤처 사장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휴맥스의 앞날이 어둡지 않으리라는 기대는 바로 그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약력> 변대규(卞大圭)

 △60년 경남 거창 출생 △83년 서울대학교 제어계측학과 졸업 △89년 동대학 박사 학위 취득 △89년 2월 건인시스템(현 휴맥스) 창업 △99∼현재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01년∼현재 SK텔레콤 사외이사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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