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정책 왜 표류하나

 비메모리산업 육성정책의 핵심사업인 중소 반도체 설계업체들의 시제품 제작서비스가 양 부처간 이견으로 업체들의 참여율이 저조해 초기부터 난항을 겪는 것은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돌리기만은 어렵다.

 이 사업을 먼저 기획한 산자부로서는 정통부가 중도에 끼어들어 업체들이 양 부처 눈치보기를 하도록 혼란에 빠뜨렸다고 내심 불만이다. 정통부로서는 산자부가 백엔드 공정까지 지원하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사업계획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양 부처가 비슷한 지원책을 내놓았기 때문에 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한 쪽으로 가겠다며 저울질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있지 않냐고 반박한다. 더욱이 반도체 경기가 어려워 당장 상업생산을 할 수 있는 업체가 적은 상황이어서 결국은 산자부의 모집공고에 대한 참여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정통부가 지난 4월 ASIC산업지원 중장기 계획 수정안을 내놓을 때부터 이러한 사태를 예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정통부가 지난해 8월 1차 지원정책을 발표할 때까지만도 시제품 제작지원 계획은 없었다. 당시 정통부는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97년부터 운영해오던 ASIC설계지원센터와 인력양성사업을 확대개편해 ASIC산업지원센터로 바꾸고 유망 ASIC업체들을 한데 모아 산업단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때만 해도 업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각에서는 산자부가 과기부와 함께 반도체산업혁신과제 중 하나로 시스템IC 2010사업을 통해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 및 제품 개발을 진행해오고 있는데 정통부가 선심성 정책으로 물타기를 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렇게 비판하면서도 업계는 적은 비용으로 설계툴을 사용하고 각종 기술교육은 물론 인큐베이팅에서 마케팅까지 지원하겠다는 정통부의 정책에서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정통부가 4월 추가 지원계획 발표에서 중소 반도체 설계업체들의 시제품 제작을 지원하는 ‘ASIC 원스톱 파운드리 서비스’를 실시하겠다고 밝히면서 혼란과 아울러 부처간 중복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이는 산자부가 삼성전자·하이닉스반도체·아남반도체·동부전자 등과 지난해부터 추진해오던 ‘멀티웨이퍼프로젝트(MPW) 사업’과 취지나 사업내용이 거의 유사해 산자부는 물론 업계 일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황이 나쁘고 중소 반도체 설계업체들이 기술개발을 채 완료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양 부처가 모두 시제품 제작지원을 할 만큼 수요가 있겠냐는 지적도 나왔다. 수탁생산업체가 동일한데 양 부처가 비슷한 지원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일부 업체들은 지원금이 더 많은 쪽으로 신청하자며 정통부의 공고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우스꽝스런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양 부처는 차일피일 업무조정 협의를 미루다 ‘뚜껑을 열어 보니 이게 아니다’라는 상황에 직면했다.

 물론 정통부는 산자부와 파운드리 운영위원회를 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해 보완점을 찾고 당초 계획대로 오는 26일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ITSOC파크(구 ASIC설계지원센터)를 개소할 계획이다.

 또 산자부는 수시모집을 통해 업체간 공정간 라인 가동시점을 조정해 이르면 내달이라도 웨이퍼를 투입할 것으로 밝히고 있다.

 비메모리산업 육성은 양 부처가 사력을 다해 지원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비효율적이고 중복적인 정책이라는 걸 알고도 이를 계속 추진한다면 양쪽 다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미 두 부처는 이 문제로 감사원의 지적과 재경부의 조속한 의견조율 요구까지 받은 상태다.

 자칫 잘못하면 지원은커녕 산업육성책에 대한 혼란만 부추기는 상황이라는 점을 깨달은 만큼 지금에라도 양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실질적이고 치밀한 추진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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