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유통 분야가 ‘유통학’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적·체계적으로 연구된 것이 10년이 채 안된다.
최근들어 여러 유통관련 연구단체 및 연구소, 학회가 설립돼 유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유통 연구에 비하면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사실 9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유통’이라는 단어는 이미 널리 사용됐지만 ‘유통학’은 그 이름조차 생소했고 기존의 경영학 또는 마케팅에 관련된 하나의 아류 정도로 치부되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80년대 후반부터 외국계 거대 유통업체 진출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내에 신유통 업태로 불리는 할인점·양판점 등이 등장하면서 유통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기존 재래시장 중심의 주먹구구식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연구, 백화점 중심의 아웃소싱 관련 연구, 대리점 중심의 소매유통 중심의 연구에서 신 유통업태를 중심으로 한 유통학 및 유통산업으로서 본격적인 유통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저변에는 급변하는 유통환경 속에 유통 업체들의 위기감이 깔려 있고 이에 대한 현실적 대안이나 이론적인 뒷받침을 해주지 못하는 학계의 고민도 깔려 있다.
당시 농수산물 유통 등 유통에 대한 중요성을 남달리 생각했던 중앙대 설봉식 교수(57)를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이뤄지던 유통관련 연구를 한 곳에 모으고 이를 통해 연구 실적을 교류하며 유통을 학문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시도됐다.
중대 산업연구소장과 산업과학대학장을 역임한 설 교수는 이미 80년대 후반 중대 경영대학원에 유통학과를 개설, 국내 유통학의 학문적 발전을 위한 단초를 마련한 유통학계의 원로로 알려져 있다.
그는 94년에 설립돼 현재까지 유통 분야의 학계와 업계가 조화를 이뤄 유통학과 유통업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대표적 단체로 성장한 한국유통학회의 초대 회장을 4년간 역임했다.
그는 한국유통학회의 설립에 대해 “당시까지 비생산적, 비능률적이라는 유통의 이미지를 극복해 유통의 생산적 이미지를 널리 알리고 유통관련 연구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차원에서 학계와 업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뜻을 같이해 숭실대 부총장인 서봉철 교수 등 학계인사와 전 신세계 부사장 이동훈씨, 전 유한킴벌리 전무 유종하씨, 한국체인스토어협회 반지명 부회장 등이 참여해 유통학의 기초를 닦고 유통학을 전문적인 학문 분야로 키우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본적인 자료 및 연구 인력의 부족, 연구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유통 발전을 위한 학계와 업계의 노력은 IMF를 거쳐 98, 99년에 이르러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한국유통학회가 산학을 통틀어 유통관련 대표적인 연구단체로 성장했고 한국유통정보학회, 한국인터넷전자상거래학회 등 최근의 유통흐름을 반영한 연구 단체의 설립 및 활동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유통학회의 경우 실사구시의 학회정신 아래 유통정책을 입안하는 관료와 유통 현업에 종사하며 유통업을 이끄는 현장 책임자 및 실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연구 논문 발표로 산학협조를 끊임없이 유도하고 있다.
설봉식 교수와 서봉철 교수가 한국유통학회 1, 2대 회장을 맡으며 유통학 발전의 근간을 마련한 유통학계의 원로이자 산증인이라면 아주대 황의록 교수, 중앙대 서성무 교수, 연세대 오세조 교수, 장안대 변명식 교수, 서강대 임채운 교수 등은 바통을 이어 유통학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고 위상을 높인 현 유통학계의 주역으로 얘기될 수 있다.
황의록 교수(53)는 90년대 초반 재직하고 있던 아주대에 유통경영자 대학을 설립하고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통업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통 실무교육을 실시한 장본인이다. 한국수퍼마켓협동연합회 회장 등 현재 유통 현업에 종사하는 다수의 책임자급 간부들이 당시 유통경영자 과정을 거쳐 현장경험과 유통이론을 겸비한 전문가로 배출됐다.
황 교수는 특히 유통의 산·관·학 협조를 중요하게 여기고 산자부 산업정책심의위원과 전경련 유통산업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으며 학계와 업계, 관계의 공조를 이끌어내고 또 실현해가고 있다. 그는 학계, 업계, 관계의 유통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유통포럼과 심포지엄을 주도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현실에 맞는 학술대회 개최 등으로 유통학을 유통현장에 깊이 접목시킨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한국유통학회 회장이며 한국마케팅학회장을 겸하고 있는 중앙대 서성무 교수(52)도 유통학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청년시절 범양상선과 코오롱스포츠 등 유통현장을 직접 경험한 몇 안되는 교수 중 한 명인 그는 과거의 현장경험과 다년간의 해외 현지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유통업의 세계화를 제창, 유통학의 방향 및 국내 유통업이 나갈 길을 세계화로 보고 있다. 또 인접 학문의 다양한 패러다임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유통정책을 논할 때는 법학, 경제사학, 도시경제학, 인문지리학을 함께 고려하고 유통업의 경쟁력을 모색할 때는 경영학 분야의 상이한 시각 등도 함께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내 소비 스타일은 이미 지구촌 이웃과 함께 하며 세븐일레븐이나 홈플러스의 국적을 묻는 사람은 없다. 해외 소싱이나 점포망의 해외 진출에 관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연구해야 월마트나 까르푸 등 세계적인 유통업체와 경쟁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특히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이웃에 있는 이점을 최대로 살려 중국 연구 모임을 장려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국내외 연구소, 학회와의 교류를 넓혀가고 있다.
양판점·할인점 등 신유통과 함께 유통업계의 양대 화두인 전자상거래와 관련,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부 박윤재 교수(55)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난해 유통학회의 포럼을 이끌며 유통업계의 최대 관심사로 등장한 인터넷 쇼핑몰을 포함,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산학교류의 성과를 일궈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통 분야 중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중소 유통업체 및 제조업체의 유통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경쟁력 강화방안 및 새로운 방향에 대해 연구를 진행중이다.
대구 계명대의 박명호 교수(51)도 IT제품의 마케팅 전략 등 최근의 추세인 IT제품과 인터넷 마케팅, e비즈니스 등을 주력 분야로 잡아 연구를 벌이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에서 유통 및 마케팅을 가르치는 오세조 교수(48)는 미국 신시내티 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미국마케팅협회에서 수여하는 최우수 논문상 베스트페이퍼어워드를 수상한 유통학계의 재원이다.
현재 산자부 산업정책 평가위원, 건교부 물류정책위원, SCM 민관합동 추진위원회 위원이며 유통시스템에 대한 조예가 깊고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그는 차기 한국유통학회 회장으로 내정돼 있다.
장안대 유통경영과 변명식 교수(47)는 전통적인 재래시장과 소매업 관련 연구가 특기다.
소매유통의 동향과 전망, 신업태 진출에 따른 백화점 마케팅 전략, 재래시장 및 소상인 활성화 방안 등 재래시장과 소매업 연구를 중심으로 최근에는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표준협회, 한국능률협회, 한국백화점협회, 제일제당, 한화유통, 롯데백화점 등에서 자문위원 및 초빙교수로서 대회활동도 활발하다.
서울여대 한동철 교수(43)는 유통 분야에서도 가전 및 컴퓨터 등 전자유통에 두각을 보여 전자상권분석 및 전통적인 가전 통신대리점에 대한 분석 및 평가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한 교수는 현재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위원, 한국SCM 민관합동 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POS, GIS, CRM 등 IT기반의 유통시스템 구축 및 개발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서강대의 임채운 교수(44)도 ‘전자상거래시대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협력’ 연구 등 유통업의 새로운 거래 방식인 전자상거래와 인터넷 마케팅 관련 분야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정보통신인력개발센터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자문위원이며 미국 마케팅학회(AMA)에서 수여하는 우수박사학위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또 한국인터넷 전자상거래 학회의 편집위원장을 맡아 ‘유통의 거래관계’ ‘e비즈니스를 이해하는 고객의 행동 양태’ 등 e커머스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전남대의 한장희 교수(45)는 유통구조와 유통환경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광주 전남지역의 지역 유통에 대한 다양한 연구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전남대와 광주상공회의소 등에 지역경제 및 지역 유통시스템과 지역 시장의 활성화 방안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기고했다.
국제마케팅을 전공한 숙명여대 서용구 교수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기업체 특별강의를 통해 유통이론을 업계에 접목시켜 나가고 있으며 멀티채널시대의 유통전략, 글로벌서비스 마케팅 전략 등 현 상황에 맞는 강의 주제와 세미나로 업계 및 언론매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
많이 본 뉴스
-
1
테슬라, 중국산 '뉴 모델 Y' 2분기 韓 출시…1200만원 가격 인상
-
2
필옵틱스, 유리기판 '싱귤레이션' 장비 1호기 출하
-
3
'과기정통AI부' 설립, 부총리급 부처 격상 추진된다
-
4
'전고체 시동' 엠플러스, LG엔솔에 패키징 장비 공급
-
5
모바일 주민등록증 전국 발급 개시…디지털 신분증 시대 도약
-
6
두산에너빌리티, 사우디서 또 잭팟... 3월에만 3조원 수주
-
7
구형 갤럭시도 삼성 '개인비서' 쓴다…내달부터 원UI 7 정식 배포
-
8
에어부산 여객기 화재, 보조배터리 내부 절연파괴 원인
-
9
공공·민간 가리지 않고 사이버공격 기승…'디도스'·'크리덴셜 스터핑' 주의
-
10
상법 개정안, 野 주도로 본회의 통과…與 “거부권 행사 건의”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