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기업에서 배운다>(18)텍트로닉스 - 전문화

 “앞으로 계측기 분야에만 주력해 ‘뉴 텍트로닉스’로 다시 나겠다.”

 지난 99년 텍트로닉스의 사령탑을 새로 맡은 릭 윌스 사장의 취임 첫 일성이었다.

 당시 세계 계측기 시장은 중대한 변화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계측기업계의 공룡인 HP가 애질런트로 독립해 전문화의 길을 선언했고 기존 범용계측기와는 성격이 다른 이동통신용 계측기 시장이 급성장하며 새로운 기술흐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릭 윌스 사장은 회사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프린터와 방송장비 분야를 매각하는 결단을 내렸다.

 텍트로닉스는 80년대 초 고체잉크를 이용한 고해상도 컬러프린팅 기술을 개발해 당시 시장주력인 도트 및 잉크젯식 제품을 누르고 최고급 전문가용 프린터의 대명사로 군림해왔다.

 고체잉크식 프린터는 회사매출의 37%를 차지하는 효자상품이었지만 텍트로닉스의 원천인 계측기사업과 시너지효과는 거의 없었다.

 결국 텍트로닉스는 99년 하반기 알토란같은 프린터사업 부문을 제록스에 넘겼다.

 하이엔드 프린터기술을 간절히 바라 온 제록스는 매각대금으로 텍트로닉스에 무려 10억달러에 가까운 현찰을 보냈다.

 이것은 텍트로닉스의 향후 진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종자돈이 됐고 제록스 역시 프린터 시장의 경기불황에도 고체잉크식 프린터의 매출실적만은 호조를 보여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상호 윈윈전략의 좋은 사례가 됐다.

 뒤이어 방송국 주조정실 제어장비와 디지털 영상프로파일러 등 방송장비 분야도 캐나다의 그라스밸리에 매각됐다. 그러나 방송관련 계측장비는 그대로 존속시켜 계측기사업의 간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구조조정 이후 텍트로닉스는 외형상 기업규모는 연간매출이 20억달러에서 10억달러로 절반이나 급감했지만 더욱 강하고 경쟁력있는 사업구조를 갖추게 됐다.

 오로지 계측기만 만드는 전문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비핵심 사업매각으로 확보한 현금유동성은 회사 재무제표를 미국 최고수준으로 올려놓았고 계측기관련 유망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면서 그동안 넘보지 못했던 신기술을 손쉽게 확보하기 시작했다.

 98년에도 지멘스의 통신용 시험설비 사업부문을 인수했던 텍트로닉스는 10억달러가 넘는 현금보유고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기업사냥에 나섰다.

 이미 시장에서 상업성을 인증받은 계측기 생산라인을 통째로 인수하는 M&A 전략은 신제품 출시에 따른 위험부담을 줄이고 새로운 분야의 계측기 고객을 손쉽게 확보하는 방법이었다.

 현재 텍트로닉스는 회사 내부에 M&A 전담부서를 두고 차세대 계측기시장과 관련한 유망기업 쇼핑리스트를 작성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선 이탈리아 넥스사의 계측기부문을 인수해 무선통신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한 데 이어 PC기반 계측기로 이름난 캐나다의 게이지어플라이드도 매입했다.

 또 블루투스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네덜란드 디지엔서사의 블루투스 분석장비 라인을 통째로 사들여 차세대 블루투스 계측기 시장에서도 선두의 위치를 점하게 됐다.

 올들어 방송용 MPEG 분야에서 텍트로닉스의 유일한 경쟁사였던 영국의 어드히어런트까지 인수해 독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3세대 무선 통신 테스트 솔루션을 완성하기 위해 미국 로데앤슈와츠 및 어드밴테스트와도 제휴관계를 맺었다.

 텍트로닉스의 기업매수전략은 갈수록 라이프사이클이 줄어드는 정밀 계측기 시장에서 수요변화에 가장 빠르게 대응하는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변혁의 시기를 맞아 계측기분야 여러 경쟁업체들도 전문화를 추구했지만 텍트로닉스의 구조조정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구조조정을 전후해 텍트로닉스의 주가는 250%

나 급등해 라이벌인 애질런트를 주당가격에서 앞지르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특히 데이터통신과 영상정보가 하나로 접목되는 퓨전 미디어시대를 맞아 텍트로닉스가 지닌 독보적인 방송분야 계측기술은 가치를 더해 차세대 통신용 계측기시장의 선두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기술위주 전문기업이 연륜이 쌓이면서 흔히 빠지는 자만심을 떨치고 자신의 한계와 강점을 냉철히 파악하고 시장을 개척한 모범적 기업경영의 결과다. 50년 이상 계측기 하나로 세계시장을 휩쓸고 있는 텍트로닉스는 우리나라 중견기업들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

 

 상호:텍트로닉스

 설립:1946년

 대표:사장 겸 CEO 릭 윌스

 자본금:15억4000만달러

 종업원수:4500명

 주요사업: 방송·통신용 계측기, 오실로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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