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와 90개, 200개의 차이’.
지난 98년부터 기자가 사용한 이동전화단말기는 모두 3개다. 1년에 한대 꼴이니 그리 적은 편은 아니다. 그런데 박민아씨(23)와 김창영씨(28)에게는 코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LG전자 CDMA연구소 소프트웨어개발실에 근무하는 박민아씨는 지난 98년부터 이동전화단말기 90여개를 사용해 봤고,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무선사업부 마케팅팀의 김창영씨는 92년부터 200여개를 사모았다.
두 사람이 부르는 이동전화단말기 찬가는 확실히 남다르다.
박민아씨에게 10초 동안 메시지를 작성하게 했더니 받침이 있는 글자를 합쳐 20자를 찍어냈다. 10∼12개에 불과한 자판에다가 엄지손가락 두 개만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1분에 120∼150타를 소화한다는 얘기니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말(음성)로 대화하는 것보다 메시지를 전송(SMS)하는 것이 더 편한 사람, 속칭 엄지공주다. 지하철에서 친구들과 메시지(SMS)로 대화하다 보면 빠른 타이핑 속도로 주변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일이 빈번하다. 어떤 친구들은 “이동전화 메시지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해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단다.
이같은 그의 능력은 직업에서 비롯됐다. 단말기 신제품이 시장에 나오기 전에 각종 오류(bug)를 찾아내는 게 그의 일.
그는 “99년에 캔자스시티, 지난해 샌디에이고에서 각각 한달 동안 머물면서 수출용 이동전화단말기에 대한 오류검증작업을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며 자신의 직업을 ‘천직’이라고 말했다. 박민아씨는 앞으로 자신의 경험을 살려 ‘이동전화단말기 사용 가이드북’을 집필할 계획이다.
김창영씨는 물량으로 지하철에서 주변의 눈길을 끌어 모은다. 전화벨이 울리면 6∼7개 단말기를 주섬주섬 꺼내들고 어떤 게 울고 있는지 찾아야 한다. 그는 현재 총 8개의 이동전화번호를 사용중이다.
그는 “단말기에 번호를 넣어줌으로써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라며 자신을 이동전화단말기 수집가가 아닌 애용자로 표현했다.
실제 김창영씨는 단순히 200여개의 단말기를 사 모은 것이 아니라 한달에 2, 3대씩을 새로 구입해 사용해 왔다. 이렇다 보니 월 통화량만도 40만∼50만원대에 달한다. 더불어 웬만한 이동전화단말기를 2∼3분 안에 분해하고 조립하는 능력이 생겼고 이동전화 인터넷 사이트까지 운용했다. 그야말로 휴대폰 마니아다.
지금까지 이동전화단말기를 구매하고 사용하는 데 든 비용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집 한 채”라고 되돌아온다. 또 왜 그토록 새 단말기에 집착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써보고 싶어서”라고 대답한다.
김창영씨는 “이동전화단말기는 단순한 통신수단이 아니라 패션”이라며 “항상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신모델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이같은 단말기 사랑은 인생행로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삼성전자가 지난 99년 대학 졸업반이던 그를 특채한 것이다.
그는 “이동전화단말기 명품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모토로라의 ‘스타텍’이 6년 이상 장수하듯 최고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사랑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
박민아, 김창영씨는 우리나라 이동통신 산업의 발전속도를 대변하는 일종의 척도다.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지하철과 산간오지에서조차 이동전화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데다 그 환경을 만끽하는 마니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얘기.
업계 한 관계자는 “까다로운 사용자인 휴대폰 마니아들이 국내 이동통신 장비산업의 경쟁력을 배양하는데 일조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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