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아바론’이란 실사영화에서는 게임 상황에서 실제 공간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미귀(未歸) 환자의 개념이 등장한다.
게임 속의 삶과 현실의 삶을 전혀 구별하지 못한 채 게임 속의 가상공간을 더욱 선호하게 되는 삶은 결국 게임의 논리 속으로 자신의 영혼을 맡겨 버리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자신의 게임 동료가 가장 높은 단계의 게임 속에서 미귀 환자로 방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직접 그 영혼을 찾아오리라 다짐한다.
그가 마지막 단계의 어려운 관문을 해결하고 가장 높은 단계의 게임 상황에 도달하자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온다. “이번에는 용량이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주인공이 게임 상황에 들어갔는데도 그곳은 다시 현실 속 자신의 집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니 항상 다니던 시가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결국 이 게임의 마지막 단계는 현실의 삶과 게임의 공간이 전혀 구별되지 않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다.
애니메이션의 리얼리티가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기에는 아직도 기술적인 측면이 부족하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에서는 홍콩의 시가지 뒷골목을 디지털 사진으로 촬영하고, 그 파일을 컴퓨터에서 조작하는 방식으로 실제와 거의 흡사한 배경을 그려낸다.
월트디즈니의 ‘다이너소어’에 등장하는 공룡시대의 배경은 실제 바다와 강·숲 등 배경 필름을 3D 애니메이션과 완벽하게 합성해 애니메이션의 표현 한계를 더욱 확장시킨다.
이제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게임간의 표현은 거의 그 영역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재돼 있다. 또 게임을 즐기는 마니아도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공간 속에 스스로를 믿고 맡길 정도의 리얼리티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실재감이 전제돼야만 게임의 차별성과 흥미가 유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상공간을 극대화해 게임에 참가하는 마니아는 가장 화려한 영상에 자신의 삶과 구별되지 않는 실재감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런 표현을 위해 압축전송기술과 보다 높은 단계의 영상연출력이 필요하게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술의 한계를 완전 극복하진 못했다. 게임 속 캐릭터를 실재화해 게임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보여주는 ‘게임 프롤로그 애니메이션’이 과도기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성 높은 단편 프롤로그 애니메이션이 극장용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등 지속적인 발전 가능성이 높다.
최근 출시된 ‘리얼베이스볼’과 ‘리얼핑퐁’이라는 게임은 바로 이런 사회문화적 현상을 기술력의 진보와 연계해 개발한 순수 국산 게임이다. 게임기 본체와 야구 배트에 장착된 컨트롤 센서가 신호를 보내 마치 야구경기장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실재감을 연출해낸다.
TV 수상기 화면과 게임기 본체가 야구경기 상황을 설정하고, 게이머는 화면에 나타나는 상황에 따라 배트를 휘두른다. 배트의 센서에서 나오는 적외선이 게임기 본체의 감지센서와 연계돼 스윙의 폭과 방향에 따라 양방향의 결과가 화면에 나타난다. 게이머의 취향에 따라 타자와 투수는 물론 구장과 팀까지 선택할 수 있다. 또 다양한 게임모드를 통해 ‘홈런레이스’, ‘도전배팅’, ‘손오공 리그’ 등 다채로운 경기를 즐길 수도 있다.
스트라이크 아웃을 자주 당하면 “2군으로 내려갈 준비를 해야겠군요”라는 멘트까지 등장해 게이머의 분발을 유도한다. ‘리얼핑퐁’에서는 강력한 스매싱이 상대편에게 먹혀들면 관중들의 환호 및 박수가 터지고 스매싱 속도까지 알려준다.
TV 수상기 화면을 보며 센서가 달린 야구 배트와 탁구 라켓을 휘두르는 실재감은 이제 애니메이션과 게임, 그리고 영화와 같은 우리의 삶이 가상공간과 실제 공간의 간극 없이 혼재돼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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