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700만장, 한국 4만장.’
요즘 미국 게임판매 순위 부동의 1위자리를 지키고 있는 EA ‘심즈’ 시리즈의 ‘성적표’다. 해외에서는 물량이 달리는데 국내에서는 재고로 쌓여 있다. 미국 EA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래도 한국은 아시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PC게임시장 규모가 큰 나라가 아닌가.
이른바 ‘글로벌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해외 대작들이 한국에만 오면 기를 못펴고 있다. 이번에는 기필코 ‘한국징크스’를 깨겠다고 단단히 벼르지만 결과는 번번이 참패다.
최근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EA의 ‘블랙앤화이트’. 지난해 미국 E3쇼 최우수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한 이 게임은 지난 4월 출시 이후 미국에서 한달만에 100만장 가량 팔린 초특급 블록버스터다. 하지만 국내 성적표는 불과 3만여장. 그것도 미국에서는 갈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국내에서는 이제 수요가 정점에 다다른 모습이다.
한빛소프트가 지난 3월 국내에 선보인 전략게임 ‘카운터 스트라이크’도 ‘동변상련’을 앓고 있는 해외 대작. 미국 밸브소프트가 개발한 이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100만장 이상 팔린 액션게임의 대명사다.
그러나 국내 판매량은 9000여장. 전체 판매량의 1%도 안되는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액션게임의 경우 ‘한국출시=참패’라는 ‘머피의 법칙’까지 생기고 있다.
전세계 블록버스터 ‘퀘이크3’도 국내서는 빛을 못봤고 최근 선보인 ‘트라이브스2’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밖에 정통 롤플레잉 게임 ‘발더스게이트2’, 밀리터리 전략게임 ‘서든 스트라이크’, 우주 시뮬레이션 게임 ‘홈월드’ 등도 ‘미완의 대기’가 된 작품들이다. 해외에서 최고의 수작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유독 한국에만 오면 작아졌다.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정서가 안맞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게임도 하나의 문화상품이기 때문에 게이머의 정서가 수요를 크게 좌우한다는 것.
때문에 게임 선호도를 보면 국민성이 보인다는 말까지 생기고 있다.
‘스타크래프트’가 국내에서 200만장이나 팔린 배경도 빠르고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국내 게이머들의 정서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 똑같은 전략게임이지만 ‘서든 스트라이크’의 경우 게임속도나 결과가 ‘스타크래프트’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느리다.
한국 사람들은 게이머가 신이 되는 ‘블랙앤화이트’의 설정 자체를 낯설어 한다. 또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액션게임의 경우 10여분만 몰입하면 어지럽다고 호소한다.
일각에서는 한국인의 이런 ‘게임 편식증’을 크게 우려하기도 한다.
이른바 ‘스타크래프트·디아블로 신드롬’이 국내 게이머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좀먹는다는 것. 이같은 현상이 나아가 국내 게임개발사들의 국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게임 편식증’이 특정 게임 아류작만 양산하는 ‘닫힌 시장’을 부를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징크스’를 못깨는 해외 대작들. 이들의 궤적을 따라 가다 보면 ‘열린 시장과 그 적들’을 만날 수 있다.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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