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 청와대 정무기획비서실 국장 choisung@cwd.go.kr
남북정상회담 1주년이 다가온다. 지난해 초 통일비서실에 근무하면서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대표단의 일원으로 판문점을 오가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숨막히는 남북대화를 나누던 일이 생각난다. 결국 회담은 일정이 사상유례없이 하루 연기되는 진기록을 세우며 성사됐다. 이후 전개된 가히 ‘획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의 흐름 앞에서 7500만 한겨레는 가슴벅찬 감동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신기루 같은 이상이 우리 목전에 현실화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민간부문에 있어 남북경협의 진전은 실로 괄목할 만한 속도로 전개되었고 급기야는 남북IT교류협력의 ‘폭발적’ 진전으로 이어졌다. 이런 배경에는 지식경제강국 구축을 주요 국정지표로 설정하고 IT분야를 핵심적인 국가발전의 중심축으로 설정하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IT 경제부국론’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대북포용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북한의 주체사상학습의 상징인 인민대학습당에서 500여명에 달하는 북한내 컴퓨터 전문가를 대상으로 남쪽에서 간 컴퓨터 전문가가 ‘IT특강’을 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통일IT포럼의 핵심 멤버가 주축이 되어 단둥에 남북 컴퓨터교육센터의 설립이 추진되고 있고, 멀지 않아 평양시내의 한복판인 통일거리에 남북합작으로 IT비즈니스센터가 건립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IT교류의 수준은 대단히 구체화되어 북한이 요청한 200여종의 ‘IT전문서적 보내기운동’을 통일IT포럼이 주축이 되어 전개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사태진전을 두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더구나 미국 부시 행정부의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답보상태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현상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적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일찍이 김정일 위원장은 오늘의 국제정세를 “과학과 기술, 그리고 컴퓨터의 시대”라 규정하면서 중국의 IT산업단지를 집중 시찰하는가 하면, 남쪽의 IT전문가를 대거 초청하여 북한내에 정보통신 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강성대국론’에서 ‘IT강성대국론’으로 국가발전전략을 수정했다는 다소 섣부른 예단도 나오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해 보면 최근 북한의 IT정책변화를 ‘일시적 변화’로 간단히 치부할 만한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의 지도부가 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최선의 대안의 하나로서 북한 IT분야의 활성화를 위해 남북IT교류의 활성화를 주된 정책적 우선순위로 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관영 중앙텔레비젼의 보도에 따르더라도 “북한의 컴퓨터망 출판물인 오늘의 소식과 상식을 전자신문 형식으로 날마다 제공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이러한 노력을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소위 ‘인도식’ 혹은 ‘아일랜드식’ 북한의 발전전략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지도부가 보여주고 있는 남북IT분야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노력은 자칫 정보통신의 발달이 북한정권의 체제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내부적 위험성을 감안할 때 대단히 야심찬 결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학계와 경제계 그리고 언론계 등 사회 각 분야의 통일IT전문가를 중심으로 결성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통일IT포럼은 ‘통일은 IT교류부터’ 시작한다는 출범 당시의 소박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21세기 남북을 아우르는 한민족 번영의 최대 벤처사업’이 남북IT교류협력사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여러 가지 당면사업을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상회담 이후 추진되고 있는 경의선 철도의 복원으로 ‘철의 실크로드’가 개통된다면, 통일IT포럼이 추진하고 있는 남북IT교류협력사업은 ‘한반도를 유라시아 정보고속도로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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