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산업 재조명](4)파워엘리트 IT마인드 키워라

 일본의 거품경제가 한창이던 지난 90년대 초반 일본인들은 넘치는 달러를 주체하지 못하고 전통적인 아날로그형 투자에 몰두, 부동산 사들이기에 급급했다. 일본이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사를 사들이고 뉴욕의 상징인 록펠러센터까지 손에 넣자 미국은 경악했다. 전세계인에게 꿈을 파는 공장이었던 할리우드 메이저나 록펠러센터는 미국의 자존심이었고 미국언론들은 이를 진주만 이후 50년만에 재개된 ‘일본의 침공’이라며 법석을 떨었다.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영화는 새로운 천년에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였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미국이 IT기술혁명을 통해 세계경제의 흐름을 뒤바꿔 놓았고 일본은 버블이 꺼지면서 2등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미국이 신경제개념을 도입, 21세기에도 여전히 팍스아메리카나를 구가하고 있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국가경영의 제1 의제(어젠더)를 IT로 설정했고 또 그것을 실천해 나갔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로 클린턴은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18세가 되면 누구나 영어를 할 수 있고, 18세가 되면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아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클린턴-고어 콤비는 정보고속도로 구축에서부터 IT산업 육성에 이르기까지 21세기 미국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미국의 국가경쟁력이 되살아난 계기다.

 한국정부도 IT를 주요 국정지표로 삼고 있다. 이미 아날로그형 경제구조의 체질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황에서 유일한 돌파구가 IT라며 갖가지 처방과 대안을 제시해 놓고 있다. IT와 생물공학기술(BT)를 양대축으로 경제체질을 바꾸겠다는 발표가 잇따랐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이 다른 것은 동원가능한 국가경영능력의 모든 역량을 싣는 것과 ‘그들만의 IT화’에 그치느냐에서 비롯된다. 미국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각 분야의 주요 의사결정권자·일반인들까지 IT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전면적·총체적 경제구조 개편에 매진할 수 있었다.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가 일반적으로 톱-다운 방식에 의해 전달되고 진행되는 것과는 달랐다.

 이 때문에 국가역량을 결집할 수 있었고 정부의 솔선수범하에 민간의 뒷받침, 법제도 보완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한국은 국가 최고경영자(CEO)인 대통령의 의지와 비전은 확고하지만 정작 이를 현장에서 집행하고 실행해야 할 정책당국자, 민간기업의 CEO들은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민간차원에서 서두르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IT열기가 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기업의 의사결정권자, 정책당국자들에게 다다르면 병목현상을 빚는다.

 우리정부의 21세기 비전은 정보통신부가 이미 수립·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오는 2010년까지 세계 10대 정보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e코리아 프로젝트는 주무부처인 정통부만 몸이 달아 총력을 기울일 뿐 범정부차원으로 넘어가면 ‘남의 일’이 되고 만다.

 아무리 대통령과 정통부가 IT를 강조해도 국가자원을 동원·투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정부관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영역,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한 채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도 않고 정책 이니셔티브를 빼앗기기도 싫어한다.

 전자정부를 구현하겠다고 야심찬 계획을 밝힌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정부부처 및 기관의 전산시스템은 제각각이고 이를 통합연결하는 일은 요원하다. 인터넷 홈페이지 정도를 꾸며놓고 정보화 선도부처라고 주장하는 곳도 한둘이 아니다.

 사정이 이쯤되니 주요기관의 전산망은 해킹에 무방비이고 국가정보 유출에도 정책결정권자들은 심각함을 전혀 못느끼고 있다.

 민간분야라 해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오명 전 정통부 장관이나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이 지적하듯, 민간기업조차 일반직원들은 정보화·IT화에 대한 갈망이 엄청나지만 정작 경영진들은 이를 못본 채 하고 있는 것이 국가경쟁력 확보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표면적인 정보 인프라, 예컨대 초고속인터넷망, 인터넷 사용자, PC 및 이동전화 보급대수 등은 단연 세계 최고수준인 한국이 IT를 활용한 국가경쟁력, 기업경쟁력 조사에서는 아시아에서도 중위권으로 처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분명히 IT가 국가경영 제1의제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담보해내야 할 핵심세력이 IT에 문외한이며, 심지어 관심조차 없다. 한국이 진정한 IT강국으로 발전, 선진국 대열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현 파워엘리트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하고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국민의식을 못따라가는 지도층에겐 미래가 없다.

 전문가들은 지금 우리사회 파워엘리트들에게 필요한 것은 벤치마킹이라고 지적한다. IT산업이 최우선 국정지표이며 미래를 담보할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은 이들도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원인인 만큼 각자의 위치에서 선진사례를 벤치마킹하라는 것이다.

 관료는 관료대로, 기업인은 기업들간에, 정치인은 정치인들끼리 미국·영국·핀란드 가리지 말고 배워야 할 것은 배우고 수용할 것은 수용해야 국가경영 최우선 의제가 제대로 방향성을 잡고 추진될 수 있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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