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등록제는 지난 95년 케이블TV방송 시대가 막을 올린 이후 6년 동안 지속돼 온 케이블TV방송국(SO)과 프로그램공급업체(PP)들의 밀월관계가 더이상 계속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1차 PP의 경우 정부로부터 등록증을 받으면 확실한 송출이 보장됐다. 왜냐하면 전부 합쳐봐야 29개 채널에 불과했기 때문에 전국의 77개 SO가 모두 이들 채널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지난해 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2차 PP 15개 업체가 등록증을 받았지만 1년이 다 돼서야 겨우 방송을 송출할 수 있었으며 그나마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사정하다시피 해야 겨우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 입장이 됐다.
그러나 등록제가 시행된 올해부터는 사정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SO의 현재 시설과 주파수로는 소화할 수 있는 채널이 최대 50여개에 불과한 데 등록증을 받은 신규 PP는 석달만에 50개 채널을 넘어서 기존 PP와 합칠 경우 100개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채널편성권을 갖고 있는 SO의 입김이 막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40여개 채널에 불과했던 PP가 올해 100개 이상으로 늘어날 경우 선택권을 쥐고 있는 SO의 영향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SO와 보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PP들의 러브콜이 그 어느때보다 뜨거워질 전망이다.
그러나 SO에 대한 PP의 마케팅이 과당 경쟁으로 치닫는 등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PP들은 최근 SO 마케팅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경쟁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마케팅 비용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SO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종교 채널 전송과 관련해 SO측에서 선교비 명목으로 수억원대의 마케팅비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또 일부 PP가 개별 SO에 홍보 마케팅비를 전달해온 관행도 더욱 확대될 조짐이다. PP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채널 영업을 시작한 한 신규 PP가 SO당 1000만원 가량의 홍보비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기존에 이같은 영업을 하지 않았던 PP들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따라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SO의 영향력이 막강해짐에 따라 SO와 PP를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MSP 업체간 제휴가 활발해지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심화될 전망이다.
온미디어·제일제당·태광산업 등 MSP 업체들은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각 업체가 보유한 PP방송을 타 업체 소유의 SO를 통해 송출해주고 그 대가로 타 업체의 PP방송을 자사 SO를 통해 송출해주는 방안을 적극 타진 중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2개 이상의 SO와 PP를 보유한 MSP 업체들이 상호협력을 통해 PP방송을 송출할 경우 수십만가구 이상의 안정적인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제당그룹은 m.net·채널F·CJ39쇼핑·드라마넷·룩TV 등 5개의 PP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중 드라마넷과 룩TV를 매각하는 대신 나머지 채널을 집중 육성해 특화 채널로서 영향력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제일제당은 온미디어·태광산업 등 MSP와의 전략적 제휴를 체결, 타 업체의 PP를 자사 SO로 송출하는 대신 자사 PP를 타 업체 SO를 통해 안정적인 송출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OCN·캐치원·바둑TV·투니버스·온게임네트워크 등 5개 PP와 3개 신규 PP를 보유하고 있는 동양그룹은 안정적인 채널 전송을 위해 현재 5개의 SO에 20% 정도의 지분을 투자했다. 그러나 SO에 직접 자본을 투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MSP 업체간 상호협력을 통해 PP채널의 전송 영역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태광산업은 정보통신 전문 PP인 이채널 하나를 운영하고 있으나 PP수를 2∼3개 늘려나가는 등 PP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태광은 PP 채널의 안정적인 송출을 위해 MSP 업체간 상호협력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2개 SO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최근 10여개의 중계유선방송을 3차 SO로 전환시킨 중앙유선도 향후 PP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MSP 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TV 사업자간 짝짓기 움직임도 활발하다.
MBC·스카이KBS·SBS 등 지상파 방송사 및 관련사들은 최근 PP·SO에 대한 지분 참여, 전략적 제휴 등 케이블TV 시장진출을 위한 다각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중이다.
이는 지상파 방송 3사의 경우 조기에 케이블TV 시장에 정착할 수 있고 케이블TV 사업자는 지상파 방송사가 보유한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는 등 상호 보완적 관계를 도모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KBS가 대주주로 참여해 위성 및 케이블 채널 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스카이KBS는 2, 3개 SO와 스카이KBS 지분 참여에 대한 의사를 타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카이KBS 관계자는 “올해는 우선 위성방송 쪽에만 주력하면서 케이블 방송을 통한 채널 홍보에 나설 예정”이라며 “유료 방송 수요가 밀집한 강남지역 SO의 지분 참여를 유도해 스카이KBS의 위성채널을 전송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제일제당 계열의 드라마넷·룩TV의 지분 인수작업을 마무리한 MBC는 지분 인수 외에도 케이블 SO마케팅, 광고영업, 신규채널 설립 등 방송사업 전 부문에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이와 관련해 ‘MBC스포츠’ 채널은 MBC플러스와 CJ39쇼핑의 미디어마케팅국 15명이 공동으로 작업을 추진한 결과 70여개에 이르는 SO 채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오락·어린이퀴즈 채널 등록을 검토중인 SBS도 MPP인 온미디어측과 SBS미디어넷의 스포츠 채널을 패키지, 이를 SO에 판매하는 방안을 협의중이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가 케이블시장에 진출함으로써 시장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도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단일 PP들의 경우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는 소지도 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 등록제 시행과 함께 장르변경도 간단해짐에 따라 인기없는 채널 장르를 인기있는 장르로 바꾸는 일도 빈번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MBC는 생활방송 장르의 룩TV를 인수한 후 게임 전문 장르인 겜비씨로 바꿨으며 다른 PP들도 경쟁력없는 장르를 인기 장르로 바꾸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TV의 채널을 확보하지 못한 PP들은 위성방송으로 눈을 돌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위성방송에만 프로그램을 송출하는 위성방송 전문 PP들도 대거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카이KBS를 들 수 있다. 스카이KBS는 회사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위성방송 송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신규 등록PP들이 케이블TV보다는 위성방송을 겨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성방송과 케이블TV에 모두 프로그램을 송출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력 있는 PP가 케이블과 위성을 모두 독식하는 경우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PP등록제는 과거 평화공존의 시대를 무한경쟁의 시대로 바꿔놓고 있다. 이에 따라 최후의 승자는 시청자들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제대로 된 PP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PP등록제가 자격없는 PP들을 대량 생산함으로써 자칫 PP들의 수준을 하향평준화 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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