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피아>문화의 세계화

◆장피에르 바르니에 지음, 주형일 옮김, 한울 펴냄

 

 세계를 실시간 연결하는 정보통신망의 확장과 더불어 지구 전체를 단위로 하는 세계문화의 태동을 전망하는 주장들이 속출하고 있다.

 세계화란 상품·자본·인력·기술·풍습 등이 국경을 넘어 자유로이 이동함으로써 국가간 상호의존성이 증가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지난 90년대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를 계기로 자본시장이 확충되면서 경제의 세계화는 가속화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여기에 ‘커뮤니케이션 혁명’으로 불리는 뉴미디어가 가세함으로써 지역적·인종적 차별성이 현격한 문화도 차츰 세계화의 대상으로 편입돼 가는 듯하다.

 음식·의상·연예 등의 범세계적 유통을 두고 로버트슨이나 스미스 등은 인류보편적 세계문화의 태동을 개진했다. 이에 반해 세계체제론자 월러쉬타인이나 탈식민주의론자 사이드 등은 세계문화론이란 서구중심국의 패권주의적 저의가 내장된 ‘허구적 이론’이라고 공박하면서 민족적·지역적 정체성을 담지한 고유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

 장피에르 바르니에의 저작 ‘문화의 세계화’는 세계문화 옹호론자와 비판론자들간의 고답적 논쟁을 보다 원숙한 입장에서 관망하고 있다.

 민족지를 연구하는 인류학자인 저자는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문화에 관한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 책의 서장에서 ‘파리에서 탱고를 추고, 베이징에서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고, 필리핀에서 다이애나 장례식 생중계를 보고 운다’는 익히 알려진 문구를 화두로 제시한다.

 그러나 저자 바르니에는 ‘문화의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자행된 문화침식의 사례나 역기능을 예시하며 경제논리·시장논리를 벗어난 독자적 문화발전 논리를 모색하고자 한다.

 상업주의적 관점하에서 특정문화는 이국적이고 화려한 부분만이 부각될 뿐, 정작 존중받을 만한 이미지를 나타낼 기회는 거의 갖지 못한다. 예컨대 ‘아라비아’ 하면 대부분 서양인들에게 양탄자로만 알려져 있고 ‘발리’ 하면 댄스로만 알려져 있을 뿐, 그들 문화의 소박한 진수는 좀처럼 인지되지 못한다. 따라서 문화의 세계화란 고작해야 상품화된 문화자원의 지구적 유통을 지칭한다며 ‘문화의 세계화’를 문화담론에서 추방돼야 할 불온한 관념으로 치부한다.

 ‘인간은 본원적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인간관을 앞세운 바르니에는 문화를 화폐가치로 환원시키려는 상업주의적 영역의 외곽으로 포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문화적 왜곡과 침탈을 야기하는 문화의 상품화는 공정문화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제적 탐욕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경량급과 중량급 선수간의 권투시합과 같은 부조리가 문화부문에서 확연히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문화는 이윤확충에 천착하는 상인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일로서, 전통문화란 소수민족의 생존권·자치권 보장운동이 주장하는 예외적 권리, 즉 ‘문화적 예외권’에 의해 보호·육성돼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문화적 예외권은 지난 80년대 초반 문화부 장관이었던 쟈크 랑이 최초로 제기한 규정이다. 이 권리는 93년에 시청각산업을 GATT협상에서 제외함으로써 프랑스 영상산업을 자본력을 앞세운 미국의 통상압력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문화현실은 경제여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다. 이는 세계 문화지형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한국문화의 영향력이 미미한 것은 경제적 힘이 약해서라고 자탄해 왔다. 그러나 역자가 말미에 부연하듯 인도·태국·베트남·그리스·이집트 등 경제력이 우리보다 뒤진 국가들이 문화적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높이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은 경제가 문화수준을 좌우하는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한다.

 그러나 시장논리를 앞세운 세계화의 파고가 드높은 오늘날의 현실은 고유문화의 자생력이나 대항력에 의지하기에는 너무나도 다급한 실정이다. 인류가 오랜 기간에 걸쳐 발전시켜온 전래적 생활양식은 이윤동기를 지향하는 유통질서에 의해 나날이 파편화되고 쇠퇴해 가고 있다.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 ‘유물이나 유적은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프랑스 문화교과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바르니에는 자기 문화에 대한 애정없이는 문화부국의 꿈이 무망한 것임을 우리에게 주지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 파편화 및 유동화가 촉진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자국 문화요소에 대한 천착만을 강조하는 것은 주체적 문화발전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그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일종의 ’소용돌이’ 상태로 묘사되는 역동적 문화환경 하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견지하기 위해서는 소재의 독창성을 넘어선 구성양식상의 창의성이 보다 중요시 여겨지는 까닭이다.

  문화가 세계화돼 가고 있다는 진단은 문화산업을 문화 전체로 확대해석한 데에서 유래한 착시현상의 일환이라는 바르니에의 견해는 경청해 볼 만하다.

<고려대 김문조 교수 pkim82@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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