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털 세상이라구?”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모 회사 광고에 나오는 말이다. 시장에서 생선 가게를 벌이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내 뱉은 말이다. ‘디지털’이라는 말에 익숙치 않은 할머니가 이를 ‘돼지털’로 이해하는 장면은 가히 이 광고의 압권이다. 비록 광고의 한 장면이지만 이미 인터넷은 어린 아이부터 할머니,할아버지의 생각까지 바꿀 정도로 우리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좀 과장해서 인터넷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 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아니 현실보다 더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인 신천지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과거 산업혁명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다. 인터넷은 가히 인류 생활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일상 생활 구석구석에 인터넷이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며 깊숙이 파고드는 시대가 왔다.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은 기본이고 TV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미국에서 막 개봉된 최신 영화도 안방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개인의 소비 생활도 인터넷으로 이뤄진다. 힘들여 백화점을 찾아가지 않고도 좋은 물건을 값싸게 살 수 있다. 단지 안방 컴퓨터 앞에 앉아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된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온 것이 쇼핑 문화이다. 사이버 쇼핑몰은 우리 생활을 뿌리부터 바꿔 놓았다. 인터넷 쇼핑몰의 가장 큰 장점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다는 점이다. 비교 쇼핑도 가능하다. 일반 매장의 경우 특정 상품의 가격정보를 얻으려면 일일리 발품을 팔아야 하지만 인터넷 쇼핑몰은 클릭 한 번으로 쇼핑몰간의 가격 비교와 풍부한 상품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 개설된 인터넷 쇼핑몰만도 3000여개를 넘어 섰다. 이 가운데 한솔CS클럽·삼성몰·두루넷쇼핑·바이앤조이·인터파크는 이미 오프라인 못지않게 지명도를 얻고 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빅3’도 인터넷 쇼핑몰 사업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들 업체의 회원 수 만도 이미 수백만 명을 넘어서는 등 새로운 유통 채널로 탄탄히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국내 인터넷 쇼핑몰 시장 규모 역시 99년 2500억원에서 지난해에는 6000억원 정도로 크게 불어났다. 특히 인터넷 사용자 수가 2000만명을 넘어 서면서 인터넷 쇼핑몰 시장은 앞으로 3∼4년 안에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사이버 교육 역시 높기만 한 교육 문턱을 낮추고 잘못된 교육 풍토를 바꿔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학교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수업을 듣고 학점을 딸 수 있게 됐으며 평생 교육의 장을 열었다. 학교에 가야만 공부하는 기존 관념을 크게 바꿔 놓았다. 이미 3000여개에 달하는 업체가 인터넷 교육 사업에 뛰어 들었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사이버대학 시대가 열렸으며 정부와 학계, 산업계에서도 사이버 교육 산업 활성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상황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교육이 우리 교육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면서 가정에서 인터넷을 통해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사이버 교육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가장 큰 변화를 맞는 분야는 금융 인프라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은행 일을 보고 주식거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창구를 직접 찾는 것보다 금융거래 비용도 저렴할 뿐 아니라 이자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은행도 경쟁적으로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인터넷뱅킹 사용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인터넷뱅킹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국내 은행이 투자한 금액도 엄청나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인터넷뱅킹 서비스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말 인터넷뱅킹 고객 수가 529만명으로 지난해 말 409만명보다 29.5%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 99년말 12만명에 불과하던 인터넷뱅킹 고객 수가 2000년 3월말에는 47만명, 6월말 123만명, 9월말 263만명으로 급속히 늘고 있다. 특히 3월중 인터넷뱅킹 이용 건수가 4454만건으로 지난해 12월중 이용 실적보다 21.4% 급증했다.
인터넷뱅킹이 급성장하자 은행·증권·보험 등에 흩어져 있는 개인의 금융 거래를 통합해서 관리할 수 있는 개인재무관리시스템(PFMS)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누구나 인터넷 상에 ‘사이버 재무비서’를 둘 수 있게 된 셈이다.
주식거래도 인터넷 소용돌이에서 예외일 수 없다. 사이버 트레이딩이 자리를 잡으면서 주식을 사고 팔 때 증권사 점포를 찾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졌다. 사이버 주식거래를 하는 고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증권사 객장이 설 땅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인터넷과 휴대용 단말기로 주식을 사고 파는 시대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사이버 주식거래 비중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대신·삼성·LG·현대·대우 등 5대 증권사를 기준으로 볼 때 그 비중이 지난해 1월 57.1%를 시작으로 11월에는 73.77%에 이르렀다.
사이버 금융 인프라가 자리잡아 가면서 전자화폐 시장 역시 날개를 달았다.
전자화폐란 소형 칩이 내장된 IC카드에 일정한 금액을 디지털 형태로 저장해 둔 것이다. 이를 이용해 각종 물품이나 서비스 대금을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다.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면 가정의 컴퓨터나 시내 곳곳에 설치된 전자 화폐 충전기를 통해 충전하면 된다. 전자화폐는 은행 등 각종 금융기관에 예치된 자신의 계좌에서 금액이 전자화폐로 이체되면서 충전할 수 있다. 전자화폐는 디지털 정보로 저장돼 있어 도난의 위험이 없고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1원 단위의 적은 액수도 지불할 수 있다. 특히 자동판매기나 버스, 지하철 등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인터넷상의 사이버 쇼핑몰에서도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
인터넷 방송도 인터넷 혁명이 등장하면서 각광 받는 분야가 됐다.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등장과 멀티미디어 기술의 고속 발전은 인터넷 환경을 텍스트 위주에서 멀티미디어 환경으로 바꾸며 신문, 방송에 이어 제3의 매체로 ‘웹 캐스팅’이 떠 오르고 있다. 웹캐스팅이란 흔히 인터넷방송으로 통용되는데 동영상·애니메이션·문자정보 등 TV 방송과 비슷한 프로그램을 인터넷망을 통해 전달하는 뉴미디어다. 인터넷 방송 사이트는 99년 173개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성인 인터넷 방송과 연예인들이 주주로 참여하면서 초기 투자 비용이 방송국보다 저렴하고 프로그램 제작이 손쉽다는 점 때문에 지난해 700여개에서 올해에는 1000개를 넘어 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각광을 받는 분야로는 온라인게임 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올해 시장 규모가 지난해 200억원 대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해 2000억∼3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산하고 있다. 넥슨이나 엔씨소프트 등은 이미 국내의 간판 온라인 게임업체로 자리를 잡았으며 주요 게임업체 역시 고속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 시장에 새로 진출하는 업체도 끊임없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사이버 레저 이른바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차세대 수익 사업으로 각광받으면서 투자자들도 몰리고 있다. 이미 엔씨소프트는 온라인 게임업체로는 처음으로 코스닥 입성에 성공해 황제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주요 온라인 게임업체는 최근 PC방 일변도에 벗어나 일반 가정 시장을 공략하려는 노력을 가시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ADSL 등 초고속인터넷망과 연계한 마케팅으로 특정 초고속인터넷망 가입자에 대해서는 게임료를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이 같은 사이버 레저 분야의 약진은 영상이나 음악 등 다른 분야에도 큰 파급 효과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게임과 영상, 음악을 합쳐 시너지를 내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떠 오르는 상황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고,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 풍속이 이제 가정 내에서 모두 가능한 시대가 온 것이다.
10년전 1차 디지털 혁명의 핵심은 기업과 사회의 정보화였다. 최근 들불처럼 일어 나고 있는 인터넷 혁명은 가정이 무대이고 개인이 타깃이다. 고립돼 있던 가정을 사회의 정보 네트워크에 연결하는 ‘e홈’을 만든 인터넷 르네상스가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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