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유체제가 가난한 다수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없다면 소수의 부자도 구원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은 존 F 케네디였다. 미국 동부의 백만장자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를 나온 전형적 기득권 엘리트였던 케네디였기에 그의 이같은 신념은 오히려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그가 만약 도시 서민 혹은 평범한 노동자 집안 출신이었다면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당장에 공격받았을 것이다. ‘표를 의식한 쇼맨십’이니 ‘계급 갈등을 부추긴다느니’하는 표현이 따라 붙으면서.
케네디가 자유경제체제의 본질을 꿰뚫은 지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해마다 맞는 장애인의 날(4월 20일)을 보냈고 다시한번 그의 ‘말’을 되새기고 있다. 장애인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약자’들은 지금도 엄존하지만 우리 사회는 40년 전 미국 지도자의 일갈에서 단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했다는 ‘허탈감’ 때문이다.
산업사회의 빈부격차는 체제의 구조적 모순이었지만 정보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은 해소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보가 곧 돈이 되는’사회에서 정보는 무한정 유통되고 있고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인터넷 세상은 산업사회의 부자가 몰락하기도 하고 극빈자가 하루 아침에 거부가 되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아직 기득권 세력이 형성되지 못한 처녀지며 이를 정복하는 키는 창조적 사고와 벤처 정신뿐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IT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기존의 경제적 계급 질서를 무너뜨릴 모멘텀이고 희망이며 복음이라며 감격해 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IT를 활용, ‘세상을 향해 열려진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회적 약자들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산업사회의 빈부격차에 발목 잡혀 있다. IT선진국이라는 미국조차 인터넷 활용도가 흑인은 백인에 비해 4분의 1, 컴퓨터 보유율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미국 상무부는 물론 유엔개발기구까지 나서 현재와 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IT기술이 계층간·지역간·인종간 빈부차이를 더욱 확대시키고 갈등을 증폭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자칭 타칭 밀레니엄 지도자들이 모인다는 다보스 포럼에서는 디지털 정보격차 즉 IT의 ‘악마성’이 어느새 단골메뉴로 등장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너무 부끄럽다. 장애인의 날이라며 백화점들은 바자회다 뭐다 해서 이를 상업화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정부 역시 ‘생색내기’에 불과한 지원책을 앵무새처럼 되풀이 하고 있다. 더욱 암담한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정치권의 모습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모든 정당이 성명을 내고 이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 시켰지만 정부와 마찬가지로 ‘입에 발린 소리’뿐 이었다. 심지어 대권주자들조차 신념과 철학에서 우러나온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지 못했다.
권력다툼에만 ‘귀신’ 같이 반응하는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게 40년 전 케네디의 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렇다고 산업사회의 후진성을 정보사회에서도 계승 발전(?)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너무했다. 이대로 가다간 새로운 밀레니엄에서도 IT가 악마로 다가서게 된다. 적어도 사회적 약자들에겐 말이다.
<이택기자 ety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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