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비테크놀로지 조정일 사장 cicho@kebt.co.kr|
실업률은 갈수록 높아져 가는데 정보기술(IT)업계에서는 기술인력이 갈수록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그 와중에 IT 개발자들의 해외행이 계속되고 있다.
대덕단지의 어느 연구소에서는 작년에 해외로 나간 연구인력이 19명이었다고 한다. 97년도에는 그 연구소에서 해외로 나간 연구인력이 3명이었다고 하니 불과 3년 사이에 6배 정도가 증가한 수치다. 국책연구기관의 상황이 이 정도이고 보면 벤처업계에서 IT인력의 외국행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국가간의 인적자원 이동은 상호교류를 통한 발전을 가져오는 측면도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상호교류라기보다는 일방적인 ‘유출’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엇이 이들을 떠나게 만드는가. 이들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IT 개발자들이 우리나라를 떠나 생면부지의 외국행을 선택하는 이유가 비단 최근의 경기침체나 급여 수준에 대한 불만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IT 개발자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추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기술환경으로부터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끊임없는 학습과 자기개발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연구개발자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주기보다는 지니고 있는 역량마저 소진시키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또한 IT 개발자들은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연구개발의 위상과 자신의 가치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신이 개발 중인 프로젝트의 위상에 대해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도 회의에 빠질 확률이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 IT업계에서 진행 중인 기술개발 수준이 전반적으로 해외 IT 선진국들에 비해 뒤져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기술 선진국에서는 엔지니어의 기술 그 자체를 하나의 ‘가치’로 인정한다. 연구에 전념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연구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연구원 개개인이 생활 안정성과 사회적 보람을 갖도록 만드는 출발점이다.
실패한 연구에 대한 태도를 보면 기술 선진국과 우리의 차이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선진국에서도 연구가 실패하게 된 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를 연구 책임자에게 철저하게 묻지만 이는 다음 연구개발을 위한 문제 분석 차원이지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연구개발 인력은 그만큼 더욱 큰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연구에 임하게 된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실패한 연구원에게 기회는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는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경영진이나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물론 당장의 이익 환수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이렇듯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유능한 인력들은 더 이상 창조적 모험을 하지 못하고, 결국 기술 수준은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일 분 일 초를 다투며 끊임없이 가속도가 붙어 굴러가고 있는 IT산업에서는 일단 개발된 기술로 이익을 내서 그 이익금을 다시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방식은 적용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장기적 안목의 IT 개발 인식이 아쉬운 대목이다.
기업 경영자는 설혹 실패한 R&D라 할지라도 개발자의 노력을 소중히 여겨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연구 인력이 끊임없이 새로운 모험을 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줘야 한다.
이런 환경은 기업의 개별적인 노력만으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기업이 계속적으로 R&D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개발된 기술이 시장에 실제로 적용되기까지 국내에는 여전히 불필요한 장애물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 있다.
정보통신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현재 정보통신 분야에는 핵심 인력 3만3000명이 부족한 상황이며, 오는 2005년에는 14만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한다. IT 인력 확보는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심각한 상황이다.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떠나는 IT 인력을 붙잡을 수 있을까. 그들이 흡족할 만한 급여도 중요하겠지만 IT 인력들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고 급변하는 기술 변화 속에서 앞서나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연구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핵심 기술인력일수록 그런 욕구가 더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은미부장 emk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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