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깊은 밤’.
일상에서 빠져 나온 두 남녀가 어두운 방에서 컴퓨터를 켠다.
사이버공간의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린다.
남과 여는 서로의 얼굴을 본 적이 없지만 메일을 교환하고 채팅에 탐닉한다. 사이버공간에서 만나는 횟수가 늘어가면서 남과 여는 각자 안고 있는 아픈 사랑과 상처를 극복해 가며 서로를 이해해 간다.
영화 ‘접속’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제목도 ‘접속’에 등장했던 두 주인공의 아이디를 그대로 사용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전도연과 한석규가 아닌 파란 눈을 가진 서양 배우들이다.
독일 박스프로덕션이 지난해말 장윤현 감독의 ‘접속’을 리메이크해 선보인 ‘해피엔드와 여인2’라는 작품이다.
해외 리메이크 1호인 이 작품은 비록 현지에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한국 영화사에 새 장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작품 이후 해외에서 한국영화 리메이크 시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영화제작사 에벌루션필름은 최근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를 리메이크하겠다고 의사를 밝혀왔다. 이 영화의 해외 배급 대행사인 미로비젼이 이와 관련한 협상을 진행중이다.
또 독일 콘스탄틴스튜디오의 한 자회사도 장윤현 감독의 ‘텔미 썸딩’을 리메이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이 작품의 해외 배급 대행사에 판권계약을 요청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는 할리우드 배우를 기용하는가 하면 현지에 맞는 시나리오를 재구성하는 등 철저한 할리우드판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도 이에 앞서 김지운 감독의 ‘조용한 가족’을 뮤지컬로 리메이크하기로 하고 명필름으로부터 리메이크 판권을 넘겨 받았다. 이 작품은 이르면 올 상반기에 일본 각 지역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은 호러영화 ‘오디션’으로 지난해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시민상을 받을 만큼 국내에 잘 알려진 인물. 우리나라와 친숙한 감독의 작품이니 만큼 국내 영화인 및 마니아들의 기대는 자못 크다.
우리 영화의 해외 리메이크 붐은 판권수익 확보는 물론 아시아지역에 머물러 있는 영화수출시장을 크게 넓혀 주는 견인차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우리 영화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높여 주기 때문이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해외 영화를 리메이크해 국내에서 개봉되는 사례는 많았으나 해외 리메이크 붐이 일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는 우리 영화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점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영복기자 yb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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