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31일. SBS방송국이 이날 오전 11시 채널 16번을 통해 ‘HDTV가 세상을 바꾼다’는 20분짜리 특집을 내보냄으로써 마침내 우리나라도 디지털TV 방송시대의 막을 올린 날이다.
지난 98년 영국 BBC가 전국 규모의 디지털TV 방송을 시작한 이후 미국·일본·독일·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이 잇따라 디지털방송에 참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지난해 9월 3일 방송의 날을 전후로 방송 3사가 각각 지상파 디지털 시험방송을 시작한 데 이어 올 하반기에는 본방송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디지털TV 방송시대가 속속 열림으로써 LG전자·삼성전자·대우전자 등 국내 가전 3사는 물론 해외 주요 업체들도 디지털TV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디지털TV가 표준 인터페이스 및 네트워킹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디지털 제품과 연결됨으로써 미래 디지털 정보사회의 중심 역할을 수행, 이 시장을 선점한 업체가 자연스럽게 디지털 가전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TV는 부가가치가 높은 가전제품이면서 성장 잠재력이 매우 커 오는 2005년쯤이면 세계 수요가 2000만대, 무려 100조원을 상회하는 거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가전 3사는 이 시장의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해 수년전부터 디지털TV를 미래 핵심 주력사업으로 선정하고 최정예 연구개발 인력과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디지털TV 분야에서만큼은 초기 도입단계부터 세계 시장을 이끌어 갈 정도의 기술력을 확보해 놓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디지털TV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을 확보하게 된 데에는 가전 3사의 노력 못지않게 학교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매우 컸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가 디지털TV 개발사업에 본격 뛰어든 것은 90년대 초반. 그 당시 국책연구사업인 HDTV 국산화 개발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을 준 학계 인물로는 이충웅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재균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비롯해 이동호·정재창 한양대 교수, 이병욱 이화여대 교수, 정재창 한양대 교수, 최석림 세종대 교수, 최윤식 연세대 교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과 함께 국내 디지털TV 관련 연구분야의 주요 인물로는 이상욱 서울대 교수, 박래홍 서강대 교수, 최종수 중앙대 교수, 김용한 서울시립대 교수, 나종범 KAIST 교수, 심영석 아주대 교수, 김남철 경북대 교수, 호요성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서종수 연세대 교수, 한동석 경북대 교수, 김대진 전남대 교수, 전병우 성균관대 교수, 전호인 경원대 교수 등이 있다.
어느덧 환갑을 뛰어넘은 이충웅 명예교수와 김재균 교수는 디지털TV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영상 및 신호처리기술 분야의 양대 거목. 따라서 현재 학계와 업계에 포진해 있는 디지털TV 관련 인물들은 대부분 두 교수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충웅 명예교수(66)는 영상신호처리기술 전문가로 지난 86년 삼성전자와 HDTV의 대역 압축방식 연구를 시작으로 KBS·ETRI·LG전자 등과 HDTV시스템에 대한 산·학협동 연구개발을 추진해 국내 취약기술 중 하나인 영상신호처리기술을 정착시켰다. 또 90년부터는 HDTV와 관련한 각종 국제 워크숍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우리나라 디지털 영상기술의 위상을 제고시켰다. 이 명예교수는 지난 95년에는 HDTV 국산화 개발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전자공업대상 산학협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로 몸담으면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해온 김재균 교수(62)는 지난 94년 한국통신학회 회장을 맡으면서 ‘디지털TV 방송을 위한 인트라-슬라이스 영상부호화방식의 개선방법’에 관한 논문집을 내놓는 등 국내 디지털TV 관련 기술분야에 큰 자취를 남겼다.
LG전자 디지털TV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박종석 상무는 “지난 84년 김 교수의 도움으로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디지털TV의 핵심인 영상처리 관련 석사논문을 낼 수 있었다”며 “평생의 업을 남겨준 김 교수야말로 국내 영상·통신 분야의 산증인”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98년 제31회 과학의 날에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이 명예교수와 김 교수의 뒤를 이어 각각 서울대와 KAIST에서 영상 및 신호처리 분야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상욱 교수와 나종범 교수가 있다.
현재 서울대 뉴미디어통신공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이상욱 교수(52)는 서울대 전기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후 줄곧 각종 학술대회를 통해 대학에서 영상 및 신호처리 분야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디지털TV의 핵심인 영상처리분야의 기술발전에 한몫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AIST 나종범 교수(48) 역시 영상처리 및 영상시스템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실적을 남겼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은 나 교수는 92년 풀 디지털 HDTV개발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디지털 지상파 TV 방송기술 중 영상부호화 분야의 기술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연구를 수행해왔다. 특히 96년에는 국내에서는 그 특성상 복호화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가 적었던 HDTV를 위한 동영상 부호화기를 소프트웨어는 물론 하드웨어 시스템으로까지 개발·시연함으로써 큰 관심을 모으며 국내 동영상 부호화기 개발 연구를 촉진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초창기 서울대와 KAIST가 디지털TV의 핵심인 영상 및 신호처리 분야를 주도했다면 요즘에는 호요성 교수와 이동호 교수와 같은 30, 40대 해외파 교수들이 이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대학에서 디지털 영상압축 방식에 대한 연구를 수행, 전자·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난 95년부터 광주과학기술원 정보통신공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호요성 교수(43)는 해외에서 먼저 이름을 떨친 인물.
호 교수는 지난 90년부터 3년간 미국 뉴욕에 있는 필립스연구소에서 현재 ATSC 디지털TV방식의 모태인 ADTV방식을 연구개발했으며 미국 사르로프연구소 연구팀과 함께 MPEG표준 기반의 영상압축방식을 제안하고 이를 하드웨어로 구현해 디지털TV 시스템을 시험하는 작업에 참여한 것. 호 교수는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많은 활약을 펼쳤는데 93년부터 2년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근무하면서 디지털위성TV방송의 국내 표준을 정하는 일을 수행하면서 이를 위한 디지털TV 인코더 장치를 개발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대학에서 공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귀국한 한양대 이동호 부교수(39)는 91년 LG전자에 입사해 영상미디어연구소에서 HDTV 개발에 잠시 참여했다가 한양대로 자리를 옮긴 후 최근 6년동안 디지털TV와 관련해 무려 20건 이상의 산학프로젝트를 수행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LG전자와 공동으로 세계 최초로 HD급 디지털TV 세트톱박스(비디오디지털리코더)를 개발해 연초 라스베이거스 컴덱스와 CE에 전시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 교수는 현재 디지털TV와 관련해 국내외 약 50건의 특허를 등록해 놓았다.
국내 디지털TV 관련 학계 인맥은 크게 서울대와 KASIT로 구분되나 최근 들어선 연세대·한양대·세종대·서울시립대·아주대·중앙대·이화여대·서강대 등 국내 주요 대학에서도 디지털TV 관련 분야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새로운 학계 인맥을 형성해가고 있다.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최윤식 부교수(44)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90년대 초 현대전자 연구소에서 HDTV개발팀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산자부 중기거점과제인 HD급 캠코더 개발과제의 기술위원장과 HDTV용 ASIC개발과제 운영위원, 대한전자공학회 화상 및 텔레비전연구회 전문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디지털TV의 기반기술 확보를 위해 다양한 연구활동을 수행해왔다. 현재는 디지털가전 기획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연세대 신호처리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박래홍 교수(47)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영상신호처리 분야의 전문가로 대학에서 HDTV·MPEG2/4 등과 관련된 동영상 부호화 및 이를 위한 디지털 영상처리, 컴퓨터 비전 및 패턴인식기술 등을 연구소 및 기업체와 공동 연구해왔다. 박 교수는 현재 고도 통신망에 응용될 영상처리기술과 저전송률 영상통신을 위한 정지영상 및 동영상 부호화, HDTV 전송채널 모델링 및 등화방법 등 디지털TV와 관련된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서울시립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김용한 부교수(42)는 서울대를 졸업한 후 미국 렌스리어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ETRI에서 10년 이상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HDTV 전송시스템 및 코텍, MPEG4 기술개발과제에 참여한 경험을 살려 96년 학교에 들어와서도 동일한 분야의 연구활동에 주력하고 있는 그야말로 이 분야의 전문가다. 대학 재직 중 김 교수가 수행한 연구과제로는 다매체 및 IP기반의 디지털TV용 비트스트림 변환 소프트웨어와 지상파 디지털TV 수신카드용 응용소프트웨어(디지털 스트림) 등이며 현재는 향후 디지털TV의 부가서비스로 도입될 대화형 응용서비스를 PC상에서 모의 실험할 수 있는 플랫폼과 인터넷방송을 위한 MPEG4 스트리밍 기술 등을 연구개발 중이다.
<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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