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민주당 국회의원 정동영 최고위원

「한국의 크롱카이트를 꿈꾸던 뉴스 앵커에서 정보기술(IT)의 비전을 설파하는 정치가로.」

지금도 「TV 뉴스 앵커」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는 민주당 국회의원 정동영(http://www.dy21.or.kr) 최고위원(48)의 이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 소속인 정 의원은 최근 IT 분야의 전도사를 자처하면서 해외 출장이 잦다.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석 달 중 절반을 외국에서 보냈다.

그가 이달 초 내놓은 「대한민국의 비전은 IT에 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여의도 정가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보고서는 정 의원이 2월에 핀란드·아일랜드·스웨덴 등 유럽 IT 강국들을 둘러본 소감과 정책제안·참고자료를 담고 있다.

『이번에 IT 선진국 곳곳을 둘러보면서 가진 생각은 우리의 비전이 IT라는 것입니다. 92∼93년 핀란드 국가 경쟁력은 한국과 비슷했습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보고서에 따르면 공업국가 가운데 한국이 28등, 핀란드가 26등이었는데 7∼8년 사이 한국은 38등으로 미끄러졌고 핀란드는 23계단 뛰어올라 세계 3위 초일류 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됐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것도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IT강국으로 떠오른 유럽의 핀란드와 아일랜드가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입니다.』

그가 유럽의 정보 선진국을 방문하고 난 뒤 느낀 절절한 소감이다. 그의 명쾌하고 논리적인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산업혁명기에 전기와 내연기관이 세상을 바꿨듯이 이제 IT가 역사를 바꾸고 있어요. 아일랜드가 10년 전 IT산업에의 집중과 해외 투자유치로 정보사회에 드라이브를 걸었고핀란드는 10년 전 역시 노키아를 중심으로 한 IT산업의 선택과 정보화 일등국가 만들기에 나선 반면 우리는 90년대 초 한보철강을 짓는 데 5조원, 경부고속철도를 까는 데 20조원을 투입하는 우매한 선택을 저질렀습니다. 한국이 만일 90년대 초부터 IT산업에 눈떴더라면 지금쯤 일본 경제를 추월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이번 출장을 통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조류인 IT 흐름에서 우리나라가 치고 나가야 한다」는 각오를 갖고 김포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우리 현실을 떠올리며 다급하고 촉박한 심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귀국 며칠 뒤 답답함으로 바뀌었다.

『우리 정치가 본질적인 것보다 지엽말단적인 것에 쏠려 있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었죠. 사소한 것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국 정치의 자화상이 급변하는 세계사의 거울 속에 그대로 비치는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는 이 같은 심정을 바탕으로 즉시 자신의 홈페이지(http://www.dy21.or.kr)에 「대한민국의 비전은 IT와 탈냉전에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글을 올렸다.

『정치의 모든 초점은 국가 비전에 모아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비전은 IT산업과 탈냉전에 있습니다. 특히 디지털 정보사회를 힘차고 강력하게 추진해가야 합니다. IT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죠.』

정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내 최연소 최고위원에 당선된 후 대중강연을 통해 『북방 프런티어의 비전과 디지털 경제강국의 건설이라는 두 가지 비전을 실현하는 데서 21세기 대한민국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IT는 국가 재설계작업이며, 국가의 어젠더를 IT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IT는 단순히 정보통신 관련 산업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국가 재설계작업인 셈이죠. IT는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국가시스템을 향상시키고 국가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중심축이 돼야 합니다.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우리를 바짝 뒤쫓고 있는데 우리 가 다시 농업이나 제조업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를 비롯한 국가의 어젠더는 이제 IT에 맞춰져야 합니다. IT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는 정부·기업을 디지털화하고 각종 사회제도를 지식정보화하는 작업을 그동안 민간부문에서 밀고 왔지만 이제는 정치권이 최선두에 설 때라고 주장한다.

『우리 경제에 새로운 비전을 열어줄 수 있는 열쇠는 IT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부터 앞장서야 합니다. 그 실천 방안 중 하나가 「전자정부」입니다.』

그가 지난해부터 일관되게 「전자정부」 실현에 박차를 가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한 것도 이런 판단에서다.

또한 정 의원은 얼마 전 한국인터넷정보학회(http://www.ksii.or.kr)의 초대 회장직을 맡은 데 이어 IT산업의 핵심인 디지털 콘텐츠 육성·보호법의 제정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3월 중순에도 일본을 방문해 IT산업 현장을 둘러보고 26일부터 1주일 동안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 빌 게이츠 회장의 초청으로 「국가정보지도자회의」에도 참석했다. 또 곧바로 실리콘밸리로 날아가 현지 디지털 혁명의

현장을 생생히 체험했다.

그는 방향을 정하면 끈질기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과 열정의 소유자다. 그의 이 같은 열정과 노력은 청년기와 18년간의 기자 생활의 이력에서도 엿볼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인 한국전쟁 기간에 형 넷을 잃은 그는 청년기를 홀로 된 어머니와 동생 넷을 거느린 가장으로 보냈다. 서울대 재학 시절 술과 토론을 즐기던 정 의원은 유신 치하에서 구속과 무기정학·강제징집이라는 길을 걸었다.

78년 문화방송에 입사한 그는 5.18 광주민주항쟁, 걸프전, 중국 민항기 불시착사건, 김일성 사망,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여러 특종을 건졌다. 뉴스 앵커 시절에는 「정동영 앵커가 마이크를 잡으면 진실을 말하는 것 같다」는 세간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96년 정계에 발을 내디딘 그는 그해 총선에서 최다득표라는 영예를 안은 데 이어 지난해 16대 총선에서도 2년 연속 전국 최다득표 당선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올해로 정치 인생 6년째를 맞은 정 의원은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당내 개혁·소장파의 리더로 자리잡았다.

60∼70년대 미국의 유명 앵커인 크롱카이트 같은 앵커가 되리라 마음먹었던 그는 이제 IT 전도사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그의 행보에 세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약력>

△1953년생 전북 순창 출생 △1972년 서울대학교 입학 △1974년 유신반대 민주화투쟁으로 구속(집시법·긴급조치 위반) △1977년 육군 병장 제대 △1979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1988년 영국 웨일스대학원 언론학 석사 졸업 △1978∼1995년 MBC TV 기자(주미 특파원, 외무부·통일원·국회 출입기자) 및 MBC TV 앵커(0시 뉴스·통일전망대·뉴스데스크 진행) △1996년 15대 총선 전국 최다득표(9만7858표) 당선.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 및 당무위원 역임 △1998년 6·4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대본부 기획단장 △1999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보 및 새천년민주당 창당준비위 청년위원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 △16대 국회의원(9만8747표, 2년 연속 전국 최다득표 당선) △(현)새천년민주당 전주 덕진구 지구당 위원장 △(현)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상임위원 △(현)한국 인터넷정보학회 회장 △(현)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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