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스템통합(SI)업체들의 과도한 수출경쟁이 무리한 해외사업 추진과 성과 부풀리기 등의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어 이의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형 SI업체들을 중심으로 해외사업 실적올리기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업체간 공조 와해는 물론 마구잡이식 사업추진으로 전체 IT업계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사례까지 등장, 수출시장 확대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SI업체의 해외사업 담당자들은 최근 긴급모임을 갖고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를 통한 자율조정에 나서기로 합의, 그간 추진해온 주요 해외사업 실적과 보유기술에 대한 회사별 자료를 제출하는 등 공동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국내 업체간 과당경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인위적인 역할분담도 업체간 자유경쟁을 해치는 등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정부나 관련단체에 의한 조정이 실효를 거두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 마구잡이식 사업추진 = 국내 시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달한 상황에서 해외 IT시장 진출이 SI업계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인식되면서 해외 물량을 확보하려는 업계의 노력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들어 해외 프로젝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나 정보없이 사업을 추진하다 차질을 빚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필리핀 국가지리정보체계사업(3500억원)과 말레이시아 국립병원 의료정보화 프로젝트(1200억원)만 보더라도 초창기 의욕적인 출발과는 달리 현지 사정에 대한 불확실한 정보로 인해 국내 참가업체 대부분이 철수해버린 상황이다. 최근에도 정확한 실체없이 소문으로만 떠도는 해외 프로젝트가 수십여개에 달한다.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해외에 내몰리고 있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는 게 SI업계 실무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 공조체제 와해 = 현실이 이렇다 보니 해외시장에서의 국내업체들간 공조체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99년 계약식을 연기하는 해프닝까지 연출했던 베트남 중앙은행 프로젝트는 국내 업체들끼리의 흠집내기로 사업수주가 지연되고 무산될 위기까지 몰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해외사업이 발주되기도 전에 참가여부를 놓고 국내업체들끼리 신경전을 벌이는 황당한 경우까지 등장했다. 베네수엘라 정부가 전자주민증 프로젝트의 후속작업으로 추진중인 등기전산화 프로젝트는 국내 대법원 등기전산화 프로젝트 경험을 앞세운 LGEDS와 베네수엘라 현지에 인력까지 파견한 삼성SDS가 사업 참가권을 놓고 미묘한 감정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중재역할에 나섰지만 『국내시장에 이미 입증됐듯이 다른 경쟁 SI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국내 SI업계가 서로에 대해 내린 평가다.
◇ 실속없는 규모경쟁 = 수주규모면에서도 국내업체의 해외 SI프로젝트는 연일 기록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1300만달러의 베트남 중앙은행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5000만달러 규모의 필리핀 등기부 프로젝트, 그리고 베네수엘라 전자주민증사업으로 단일사업 수주규모가 수억달러대를 돌파했다. 최근 급부상한 중동지역 IT프로젝트는 수십억달러 이상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5000만달러로 발표된 필리핀 등기부 프로젝트는 실제 수주액이 5배 가량 부풀려졌다. 5000만달러에는 실제 수주한 정보시스템 구축비용(1000만달러)외에 향후 현지에서 시스템 운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예상수익에 따라 추가공급이 가능한 부분까지 포함돼 있다. 더욱이 그동안 국내 SI업체가 해외사업으로 실제 수익을 올렸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것이 SI업계의 정설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해외 건설 프로젝트 사상 최대인 61억달러 규모의 2단계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수주하며 「중동신화」의 한 축을 이루던 동아건설이 침몰한 것은 결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고 지적한다.
◇ 뾰족한 대안이 없다 = 해외시장에서만큼은 국내업체간 과당경쟁이 반드시 지양돼야 하고 기술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서둘러 조성해야 한다는 원칙론에는 모든 업체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국내 업체간 공조체제를 구축하느냐의 문제에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그동안의 영업관행으로 볼 때 대형 SI업체간 공동보조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와 SW관련단체들이 그룹사들을 오가며 진땀을 흘리고 있기는 하지만 쉽게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결국 대형 SI업체들 스스로가 수주 결과와 규모에만 집착한 마구잡이식 해외사업 추진과 국내업체끼리의 제살깎기 경쟁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해외사업 추진에 대한 정확한 내부기준을 자체적으로 수립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실무 담당자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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