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옌볜 과학기술대를 가다>인터뷰-김진경 옌볜과학기술대 총장

「중국 한민족을 위한 IT기술의 씨를 뿌리는 사람.」

해외 첫 한민족 대학인 중국 옌볜(延邊)과학기술대의 김진경 총장(66)에게 붙여봄직한 표현이다.

김진경 총장은 지난 87년부터 북한에 식량·의료 지원활동을 해온 민간 대북지원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경남 마산 출신인 김 총장은 미국 베린 크리스천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고려신학대 교수를 지냈다. 지난 79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 총장은 사업가로도 성공해 81년부터는 플로리다주 한인상공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때부터 김 총장은 북한과 중국의 동포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김 총장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변방에 불과한 옌볜에 조선족대학 설립이라는 큰 구상을 하게 된 것은 지난 80년대 중반.

『지난 86년 중국 사회과학원의 초청으로 중국을 첫 방문했는데, 타문화권 가운데서도 우리의 말과 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어요. 그런데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는 옌볜에는 초중고등학교만 있고 대학이 없어 옌지에 과학기술을 가르치는 대학을 설립키로 결심한 거죠.』

그러나 김 총장의 거대한 구상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한국-중국 수교 이전인 당시에는 중국대륙에 외국인대학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 총장은 주위의 만류와 반대를 무릅쓰고 기차로 30여시간이나 떨어진 북경과 옌지를 100여차례나 오가는 강행군을 하면서도 대학교 설립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이같은 김 총장의 뜨거운 열정과 꿈은 서서히 주위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의 뜻있는 사람들과 기업이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고 국내외 교수들도 교육구상을 듣고 학교 설립에 동참했습니다.』

이같은 국내외 지원자들의 성원으로 5년여의 준비를 거쳐 1992년 9월 16일 마침내 중국 첫 중외합작대학인 옌볜과학기술대학은 역사적인 개교를 하게 됐다.

『옌볜과학기술대학의 개교는 중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중국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옌볜지역에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옌볜을 동북아 발전을 주도할 과학기술단지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은 지역인사들을 고무시

키는 계기가 됐어요.』

김 총장이 옌볜과기대를 설립한 데는 과학기술과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한 그의 확고한 교육철학과 의지가 바탕을 이뤘다.

『21세기를 맞이해 세계 여러나라들은 서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경쟁의 승패는 군사력보다는 경제력에 있다고 봅니다. 이 경제력은 과학기술이 바탕을 이루고 IT의 창조적 성취와 그 발전성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IT에 의존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고 확신합니다.』

김 총장은 이같은 소신을 바탕으로 최근 대학에 정보통신 관련학과를 추가신설하는 등 IT교육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의 헌신적 노력에 힘입어 옌볜과기대는 설립후 8년만에 중국내 100대 대학 수준에 올라섰다.

『옌볜과기대 학생들은 4가지 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컴퓨터기술을 비롯해 한국어·영어·중국어 발휘능력이 그것입니다. 졸업생들의 취업률도 100%입니다. 옌볜과기대는 이제 200만 조선족의 「자부심」이 됐습니다. 옌볜과기대가 민족사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김 총장은 학생들과 같이 대학 캠퍼스내에 거주하면서 학생들을 돌보고 있는 교수들의 헌신과 봉사에 대한 자랑도 빠뜨리지 않았다.

『교수들은 구미 여러 우수한 대학에서 자신의 정력·시간·돈을 들여 획득한 학위를 갖고 개인의 안락한 경제생활과 명성을 포기한 채 학생들과 더불어 학문적 진보와 발전에 자신의 인생의 보람을 찾고자 하는 진실한 교육자들의 표본입니다.』

이처럼 옌볜과기대가 수준높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기꺼이 후원활동에 동참하는 기업 및 기업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에는 재미교포 벤처투자가인 스티브 김(한국명 김윤종)씨가 매년 10만달러의 장학기금 및 교육환경개선기금을 기부키로 약속하기도 했다.

미국 국적을 가진 김 총장은 중국 조선족들에 대한 과학기술교육사업못지 않게 북한내 젊은이들의 IT교육에도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그는 지난 99년 분단 이래 처음으로 남북한 정부의 승인을 받아 나진·선봉지역에 과학기술대학 설립을 추진해 왔다.

지금까지 15년간 수차례 북한을 드나들며 교육·의료 지원사업을 추진해온 김 총장은 지난 24일 평양에 다시 들어갔다. 그는 여느 때와 달리 이번 평양행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에 북한에 가서는 평양에 IT대학을 설립하는 것을 집중 논의할 예정입니다. 평양에 IT대학을 세워 북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IT전문교육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김 총장은 북측과의 협의를 통해 나진·선봉지역에 짓기로 한 과학기술대학을 평양에 옮겨 세운다는 복안이다. 『IT기술을 통일의 밑거름으로 삼아 앞으로 한반도가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교육자로서 본분에 더욱 충실할 작정입니다.』

평양에 IT대학을 설립해 북한의 정보기술력을 높이는 일에 마지막 힘을 쏟을 각오라는 김 총장의 눈빛에서 한민족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을 읽을 수 있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