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2)세계로 향한 무한질주 희망의 봄기운 싹튼다

「과감한 글로벌 전략만이 살 길이다.」 제조업체들이 올들어 「글로벌 전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경을 초월한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적극적인 세계시장 진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좁은 내수시장에 안주해서는 더 이상 희망도 비전도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조업계의 패러다임 자체도 바뀌고 있다.

우리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정보기술(IT)분야 제조업체들의 각오는 더욱 비장하다. 가전·컴퓨터·정보통신·반도체·부품 등 모든 업종을 망라해 세계화는 이제 IT제조업계의 확실한 화두로 떠올랐다. 인터넷·모바일·게임·엔터테인먼트 등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업종을 포함해 세계화를 향하는 업계의 발걸음에는 예외가 없다.

특히 인터넷 보급 확산에 의해 지구촌 경제시대가 열리면서 대기업은 물론 중소·벤처기업에 이르기까지 세계화가 기업의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세계화 추진 정도에 따라 기업의 명암도 엇갈리고 있다. 각종 투자기관들은 기술력·시장성·수익성 등과 함께 세계시장 진출 가능성을 투자의 핵심요소로 추가하는 추세다.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세계화를 본격 추진해온 대기업들도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이들 대기업은 단순한 세계시장 진출에 머물지 않고 현지화에 목표를 두고 글로벌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단순 현지법인이나 현지거점 차원이 아닌 현지인에 의한 기업경영과 현지 주식시장 상장 등 보다 진일보한 세계화전략을 전개하고 있다. 실제로 이미 LG전자 등 주요 대형 IT업체들은 해외법인의 현지 주식시장 직상장까지 선언했다.

중견업체들도 세계화에 더욱 고삐를 당기고 있다. 「대기업의 좋은 줄 하나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안이함에서 벗어나 「세계화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자세로 해외진출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중견업체들은 특히 90년대 유행했던 빅바이어인 대기업 따라가기 식의 해외 동반진출에서 탈피, 이제는 독자적인 해외진출과 현지화에 승부를 걸고 있다.

벤처기업들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내수부진과 금융경색으로 지난해 심한 홍역을 앓았던 제조업 벤처들은 벤처정신으로 재무장, 세계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다산벤처의 서창수 부사장은 『그동안 세계 곳곳을 돌면서 우리 벤처업계의 화두는 「세계화」라는 것을 절감했다』며 『세계화를 위해 모든 경제주체들이 합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벤처업계에서는 적극적이고 과감한 글로벌전략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곳이 코스닥등록 스테핑 모터를 생산하는 모아텍(대표 임종관)이다. 이 회사는 90년대 중반부터 국내는 연구개발(R&D) 부문만 남긴 채 중국 동관 등 해외시장으로 진출, 큰 성과를 거둔 케이스다.

이 회사는 과감한 해외진출로 코스트를 낮추고 품질을 높여 현재 NMB·산쿄 등 일본의 세계적인 모터업체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스토리지용 스테핑 모터업체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임종관 사장은 『당시로서는 리스크가 적지 않았지만 R&D를 제외한 모든 부문을 해외로 이전한 덕택에 높은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중국공장이 거의 본사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위성방송수신기 전문벤처기업인 휴맥스(대표 변대규)는 공격적인 세계화전략이 제조업벤처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진리를 증명해준 경우. 이 회사는 얼마전 무려 1000억원에 달하는 위성방송수신기 수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벤처기업 세계시장 진출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휴맥스는 더욱이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이 선호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이 아니라 자체브랜드로 수출키로 계약을 체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처럼 세계화가 제조업체의 새로운 돌파구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세계화를 향한 기업들의 전략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해외 현지생산법인 설립은 물론 △해외 유관업체와의 조인트벤처 설립 △마케팅 전담법인 설립 △해외생산 아웃소싱 △해외 R&D법인 설립 등 그 형태가 다양하다. 최근엔 해외 벤처캐피털이나 금융기관·관련기업들로부터 외자를 유치해 화학적 접목을 통해 해외로 나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간 연합전선 구축도 두드러지고 있다. 삼성물산·SK글로벌·현대종합상사·대우·LG상사 등 종합상사들은 자체적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의 해외마케팅을 전담하거나 공동법인 설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체제를 구축, 세계화를 추진중이다. 특히 SK글로벌은 해외마케팅 전문펀드를 결성하고 해외진출이 가능한 기업들을 컨소시엄으로 묶는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예 해외에서 먼저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형태의 세계화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는 기업도 많다. 해외에서 당당히 실력으로 승부하겠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업체가 칩부품 전문 벤처기업인 쎄라텍(대표 오승룡)이다. 칩인덕터·칩배리스터·칩비드 등 깨알보다 작은 칩부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이 회사는 사업초기인 90년대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낸 덕택에 지금은 무라타·TDK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업체에 버금가는 칩부품 전문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이로 인해 지난 99년에는 300억원의 매출에 무려 1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우량기업으로 입지를 굳혔다.

MP3플레이어 등 오디오·비디오 인코딩칩 전문업체인 디엔씨테크(대표 박한서)도 이같은 부류에 속하는 유망벤처기업.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MP3플레이어 생산국임에도 불구, 디엔씨테크는 오히려 미국·유럽 등 해외에서 승부수를 던져 이제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박한서 사장은 『해외에서 먼저 사업을 하는 것이 어려움도 많고 리스크도 크지만 잘만하면 그 반대급부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며 『과감한 글로벌전략에 힘입어 이제는 TI 등 세계적인 반도체업체들까지 전략적 제휴의 손길을 보낼 정도가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조업체들의 세계화의 가교역할을 하는 컨설팅업체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세계화라는 시대적 조류에 편승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전문인력과 경험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들과 해외파트너를 연결해 주는 컨설팅업체가 최근 각광받고 있다. 이들은 최대시장인 미국을 비롯해 일본·중국·호주·유럽 등 지역별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대상업체를 발굴하고 있다.

세계화가 국내 제조업체에 안겨주는 이점은 이미 여러가지 측면에서 증명되고 있다. 세계화에 적극적인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과의 차이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제조업체들이 「굴뚝기업」이라는 추락한 이미지를 쇄신하고 명실상부한 글로벌기업으로 환골탈태하기 위해선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무엇보다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기업의 핵심 구성원들의 세계화를 향한 열린 경영의식이 아직은 미흡하다는 사실이다. 이러다보니 수동적이고 주먹구구식 해외진출로 인해 비용만 낭비하거나 중도에 포기하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국내 중소·벤처기업의 해외마케팅 전문업체를 설립, 활발하게 활동중인 얼리엑시트닷컴의 박승진 사장은 『세계화의 첫 단추를 잘 꿰는 것은 CEO를 비롯한 모든 기업구성원들의 세계화에 대한 확실한 마인드 정립』이라고 강조한다.

사전에 치밀한 준비작업도 없이 「일단 나가고 보자는 식」으로 너무 안일하게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진출지역에서 조기에 성공적으로 정착,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그 나라의 사회·문화적 특성, 정확한 시장분석, 인력수급 현황, 각종 비용산출 등 체계적인 분석과 리서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국내기업의 중국진출 중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동북아경제연구소의 김병중 소장은 『국내기업들이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중국에 경쟁적으로 진출하고 있으나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도 성과를 보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다』며 『이는 중국인의 습성, 문화적인 괴리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나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자원이 부족하고 시장이 협소한 우리나라의 특성상 세계무대 진출, 나아가 세계화는 물리칠 수 없는 대세』라며 『우리와 배경이 비슷하면서 세계화에 성공,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이스라엘을 거울삼아 국내 제조업체들도 세계화 추진을 위한 보다 체계적이고 치밀한 전략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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