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2)주요 경쟁국 동향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중국·대만 등 동아시아 4개국간 IT제조업 선점경쟁이 치열하다. 이들 4개국은 전통산업 재편은 물론 첨단산업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준비로 소리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때 가전왕국으로 불리던 일본이 중국에 뒤쳐지는가 하면 중간생산제품에 강점있는 대만은 소리없이 세계 IT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일본도 IT제조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몰아친 IT혁명이라는 물살을 제때 타지 못해 제조업왕국을 내주게 된 일본은 새로운 세기에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 주도하에 범국가적으로 IT산업 도약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성장시대 미국추격에 중점을 둔 효율중시 일본식 경영시스템이나 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디지털가전·통신단말기 등 첨단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 위주로 생산부문을 분리, 독립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소니·마쓰시타전기·NEC는 공장의 통폐합으로 생산전문회사를 창업한 것이 대표적이다.

경쟁사업을 통폐합하기도 한다. 지난 99년말 NEC·히타치는 메모리반도체 설계부문을 통합한 데 이어 올 4월까지 생산부문을 통합한 「엘피다메모리」를 설립할 예정이다.

특히 IT를 제조업의 생산부문에 도입하여 생산성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남다르다. 자동차·전자·종합상사 등 아직도 탄탄한 전통산업 기반을 가진 일본의 이같은 변화는 주변 경쟁국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향후 5년 이내에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일본 정부의 「IT일본」 전략은 비록 수립단계에 있지만 기업들, 특히 제조업체들의 의욕적인 변신을 끌어내고 있다. 소니·마쓰시타·샤프 등 전통적인 굴뚝기업들은 경영과 제조를 e비즈니스를 포함한 IT부문과 접목시켜 나가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개발해 생산 효율화로 연결시키고 있는 IT기술도 적지않다. 대표적인 것이 굴지의 가전업체인 샤프가 독자 개발한 수요예측시스템이다. 이 회사는 이를 통해 생산 현장의 제품재고를 기존의 1.2개월에서 0.6개월으로 단축, 생산원가를 낮추는 성과를 올렸다.

또 소니가 서로 다른 제품의 생산 효율화를 시킬 수 있는 「e-PLANETS」이라는 인터넷시스템을 개발해 세계 각국의 거점과 재고정보를 리얼타임으로 공유하면서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으며 도시바는 인터넷상의 부품 조달시 오픈 입찰제를 도입하여 거래선을 개방, 전년 대비 17%의 조달 비용을 삭감했다. 후지쓰와 캐논은 부품의 인터넷 조달 확대를 통해 비용삭감 및 시간단축 등을 실현했다.

일본 기업의 IT접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자사 제품의 인터넷 판매를 추진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소니와 마쓰시다전기의 경우 기존의 대리점과는 달리 새로운 판매 방식의 하나로 자사 제품의 인터넷 판매를 추진해 소니는 자사 제품의 인터넷 판매를 담당하는 「SonyStyle.com」 및 게임기 판매 「SonyPlayStation」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이같은 업체들의 변화는 전통적으로 일본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디지털 가전제품이나 배터리, 게임기,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 주요 생산품들의 대외경쟁력을 높여 전자산업 강국을 다시한번 인식시켜줄 전망이다.

중국도 21세기 수퍼파워 국가로 부상하기 위한 변신 중이다. 지난 20년 동안의 개혁개방 성과를 발판으로 명실상부한 초강대국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변화의 노력이 한창이다. 이가운데서도 성장축을 전통산업에서 IT산업으로 옮기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전통제조업뿐 아니라 첨단산업 생산거점으로 중국의 위상이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해외생산분을 제외한 정보기술(IT)생산에서 처음으로 경쟁국가인 대만을 추월할 정도로 IT생산 분야에 가속도가 붙었다. 대만은 지난해 IT제품 생산이 230억8000만달러어치로 전년에 비해 9.8%라는 소폭 상승에 그친 반면 중국은 38.4%라는 고성장 속에 255억4000만달러어치를 생산했다.

이로써 중국은 대만을 제치고 IT제품 생산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어 처음으로 세계 3위에 올랐다.

이같은 변화를 선도해온 지역은 중국 100대 상장기업 중 23개 기업이 밀집한 선전·둥관·주하이로 연결된 「광둥 생산기지」로 중국 IT산업의 핵심적 생산거점이다.

전세계 컴퓨터 마더보드 시장의 35%, CD롬의 80%, 키보드의 60%가 광둥 기지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외에도 컴퓨터 마우스 40%, 복사기 50%, 프린터 50%도 이곳에서 전세계로 실려간다.

중국이 인터넷산업 등 첨단 분야에서도 강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6월말 기준으로 중국의 인터넷 인구는 1690만명으로 99년말 890만명에 비해 6개월 만에 2배로 늘어났고 인터넷과 연결된 컴퓨터 수는 350만대에서 650만대로 급증했다.

현재 중국이 전통제조업 분야에서 세계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품목은 TV 36.2%, 세탁기 23.5%, 에어컨 50.1%, 냉장고 21.1% 등 다양하다.

이처럼 이미 중국은 전통산업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해 세계 최대의 가전생산국으로 부상했고 IT산업 분야에서도 세계 1위를 목표로 전력을 다하고 있다.

작지만 강한 대만은 지난 80년대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하이테크 육성 정책으로 해외 엔지니어와 박사들을 자국으로 불러들여 하드웨어 강국 건설을 꿈꿔왔다.

대만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2배가 훨씬 넘는 180만평이라는 대규모 테크노파크인 「신주 단지」를 조성해 대만 IT산업의 전초기지로 육성하고 있다.

대만이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는 물론 PC·모니터·CD롬 등 각종 정보기기산업과 최근 비약적인 성장을 기록중인 통신산업 등 IT산업 전반에서 꾸준한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저력은 신주 테크노파크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 시장의 D램 분야 20%, 파운드리 분야 80% 이상을 차지하는 대만 업계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생산라인 증설과 차세대 제조공정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오는 2003년까지 16개 이상의 제조 및 조립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대만의 IT관련 산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통신산업이다.

지난 96년 통신산업이 민간에 개방된 이후 서비스 자유화와 인터넷의 보급 등에 힘입어 서비스와 기기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의 가파른 성장을 기록 중이다.

무선통신기기 성장율이 연간 200%에 육박하는 고공행진을 몇년째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대만의 휴대폰 단말기 제조업체들의 생산계획을 종합하면 약 17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 IT제품 대부분은 미국과 유럽시장에 수출 상품으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지난 연말을 기준으로 생산제품의 세계시장 비중을 보면 스캐너의 경우 90% 이상, 마더보드와 컴퓨터 케이스 및 스위치 파워서플라이는 70% 이상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트북 컴퓨터와 모니터도 전세계 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노트북 컴퓨터 제조업체는 세계시장점유율 1위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생산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IT를 활용한 ERP 시스템을 도입해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더욱 다질 계획이다.

전통산업에 IT를 응용하고 새로운 첨단 산업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주변 경쟁국의 소리없는 알찬 준비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IT제조업에서 중국의 급부상은 이제 세계 경제질서를 좌우하는 핵심변수로 등장했다. 기존 세계경제는 미국·유럽연합(EU)·일본을 축으로 하는 3극구도였으나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4극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일본과 중국이 제조업에서 상호결합할 경우 세계경제체제가 불안정해질 가성능마저 있다. 대만의 변화 움직임도 주목된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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