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민 삼성경제硏 수석연구원
우리나라의 IT제조업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다. IMF기간 중에도 연 30% 이상의 성장을 거듭한 결과 현재 생산액기준으로 볼 때 세계 7위에 해당할 정도로 우리나라는 IT산업 강국이 됐다. D램·LCD·모니터·CDMA단말기 등 주요 IT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1, 2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 IT제조업은 외형뿐 아니라 내실도 갖추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제품, 세계 최초의 제품들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라디오 조립에서부터 시작된 우리 IT산업의 기술은 CDMA 세계 최초 상용화를 비롯, 차세대 반도체의 최초 개발 등 일취월장 하고 있다.
국내 IT제조업의 경쟁력 원천은 다음과 같은 4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생산기술력이다. 반도체 생산공정에서의 수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것이 이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또한 무선단말기에 대한 높은 생산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무선단말 생산공급기지로 부상했다. 노키아·모토로라 등 세계적인 이동통신업체들이 일본으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한국의 높은 생산기술력을 이용하여 한국에서 이동통신 단말기를 생산하고 있다. 이 같이 한국을 선호하고 있는 것은 불량품이 100만대에 3대 정도로 중국이나 홍콩공장에 비해 생산효율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생산기술력은 장비와 노동력 등 두 가지 요소에 대한 생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장비측면에서 보면 후발자인 우리 IT업계는 선발자보다 더 최첨단의 생산시설을 투자함으로써 높은 장비효율성을 갖게 됐다. 특히 반도체·LCD와 같은 장치산업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장치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에는 대기업의 역할이 컸다. 산업화에서 뒤진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캐치업하기 위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것이다.
다음으로 노동력 측면에서 보면 학습능력이 뛰어난 저임금의 노동력이 생산현장에 투입됨으로써 높은 노동 생산성을 확보하게 됐다. 특히 시스템 제품이 아닌 단품성격의 산업일 경우 노동생산성이 높다.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표준화 제품과 기술발전 추세가 예측가능한 제품에서 한국이 강하다.
반도체의 경우 기술적인 특성이나 기술개발 목표 등 기술발전 경로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높은 노동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종업원의 숙련도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국민의 성실성과 학교교육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기술력은 중국 등 후발국에 추월 당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제품개발력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초기에는 생산력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생산 및 도입기술을 자체 소화해 서서히 제품 개발력, 상용화 기술력을 확보하게 됐다. 도입기술을 기반으로 자체 제품설계와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우리나라도 기술 특허를 다수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반도체·통신 등의 분야에서 신제품 개발력은 돋보인다. 미국에서 조차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던 CDMA단말기를 지난 96년 세계최초로 상용화했고 현재는 CDMA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됐다. 반도체 부문에서도 D램의 제품개발에서 경쟁국을 추월하고 있다. 16M D램을 경쟁국과 거의 같은 시기에, 64M D램을 일본에 앞서 개발한 이후 4G D램에 이르기까지 차세대 제품개발에서 선진국을 앞서 나갔다. 컴퓨터 부문에서도 소비자 니즈와 기술 발전에 맞춰 저가컴퓨터를 기획 생산하여 미국과 일본시장에서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바 있다.
셋째, 최고경영자의 결단력과 기회포착력이라 할 수 있다. 최고경영자의 높은 사업감각과 리더십으로 탁월한 시류판단과 기술예측에 의해 우리의 경쟁능력에 적합한 사업기회를 포착하고 이를 주력사업으로 육성시켰다.
기술변화 시점에 새로운 기술로 선진국을 추격하고 진입장벽을 구축했다. 정부정책과 보조를 맞추면서 새로운 통신 방식인 CDMA에 진입하여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 그 한 예다. 특히 주기적으로 호·불황이 교차되는 산업에서 불황기에 과감하게 투자해 선진국과의 격차를 축소할 수 있었다. 주력산업이 우리와 비슷한 일본과의 경쟁과정에서 일본기업이 투자를 억제하고 있는 사이에 대규모 투자를 함으로써 일본과의 격차를 축소했다. 반도체는 지난 87년, 90년 초 불황기에 투자하여 도시바 등을 추월했고 LCD는 97년 말 불황기에 투자하여 샤프를 추월했다.
또한 중요한 사안에 대해 과감하고 빠른 의사결정은 디지털가전·반도체·LCD·통신 등 주요 IT 분야에서 일본기업을 캐치업 할 수 있었던 요인중 하나가 됐다. 「끝가지 밀고 나가자」 「앞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식의 소신형 자세와 강한 추진력은 미일 등 선진기업이 두려워하는 우리의 장점이다.
넷째, IT신제품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의 높은 수용력이다. 인터넷 이용자 수는 지난 97년 160만명에서 2000년 12월 말 현재 1900만명으로 증가했고 컴퓨터 보급률은 97년 43%에서 2000년 말에는 66%로 상승했으며 이동전화 가입자는 지난 99년 유선전화를 추월한데 이어 2000년 말 현재 2700만명으로 세계 7위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이 빠른 증가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느 한 곳에 몰입하는 열풍(fad)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는 때때로 부작용을 낳기도 하지만 신제품에 대한 초기시장을 형성함으로써 기업의 위험부담을 줄이는 버퍼역할을 해왔다. 즉 신제품에 대한 높은 수용력은 국내 기업의 규모경제적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언급한 이러한 4가지 경쟁력은 20세기형으로 21세기에는 통하기 어렵다. 따라서 표준주도력, 네트워킹력, 연구개발력, 마케팅력 등 21세기형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21세기는 변화의 시대다. 변화가 많은 만큼 기회도 많다. 변화를 기회로 활용하여 우리의 경쟁력을 살린다면 21세기형 경쟁력 확보도 결코 비관적이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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