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1)장점은 무엇인가

◆최근들어 경제분야 도처에서 제조업 부활론이 거세게 대두되고 있다. 각계에서는 산업의 뿌리인 제조업을 소홀히 하면 결국 그 경제는 허약체질로 변해 쇠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니오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이같은 지적을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난 듯한 제조업체 종사자들의 푸념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식산업의 깃발이 휘날리는 21세기에 「제조업을 살리자」고 외치는 것은 어쩌면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과연 제조업은 정보산업에 비해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일까. 제조업이 구경제를 떠받칠 수 있었던 데는 나름대로 장점과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LG경제연구원의 분석자료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노동생산성 증대는 제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광업 및 기타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 증가 기여도는 극히 미흡했던 반면 전기·전자 및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의 기여도는 상당히 높았다. 특히 반도체 관련 기계 및 장비제조업의 기여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LG경제연구원의 강태욱 연구원은 『우리 경제는 아직 탈 제조업화 과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며 『따라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전체의 생산성 증가 노력과 경제정책 운용이 아직은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분석은 사실 해외에서도 적지않은 응원군을 두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와 포브스에서 경제전문기자로 활동했던 에몬 핑클턴은 그의 저서 「제조업은 영원한가」(지식여행 간)에서 제조업이 지식산업이나 기타 서비스업에 비해 결코 경쟁력에서 뒤지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그가 제조업의 장점으로 꼽는 제1요소는 고용밸런스가 뛰어나다는 점이다. 특히 지식산업의 경우 상위 20% 정도의 엘리트 인력만을 흡수할 수 있는 반면 제조업은 폭넓은 고용 창출력을 발휘한다는 지적이다. 경제의 정보화가 매우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이의 진전에 따라 십수년 안에 미국 전체 노동인구의 20%가 사실상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고용률을 높임으로써 실업을 해소하고 노동인구를 재교육시켜 재배치하는 제조업의 완충력은 사회의 근간을 떠받치는 힘이라는 얘기다.

또 제조업 비중이 클수록 빈곤층과 고소득층의 소득 격차가 덜하다. 핑클턴에 따르면 제조업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미국은 전 인구에서 빈곤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난 72년 17%에서 90년대에 25%까지 높아졌다. 반면 제조업 종사자의 비율이 미국보다 월등히 높은 스위스·일본·덴마크·스웨덴·독일 등은 빈곤층 비율이 훨씬 낮다는 것.

수출에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지에 있다. 정보산업은 일종의 문화상품이므로 수출상대국의 언어와 문화에 맞도록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부가비용이 적지 않게 소요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제3세계의 고급인력 유입 등 수입유발 요인이 많아져 만성적인 무역적자에 허덕이게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제조업 부활론을 외치는 것은 전문가들만이 아니다. 국내 주요 기업 CEO들도 제조업의 장점을 역설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조업체인 삼성중공업의 이해규 사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중화학공업은 성장의 견인차이자 거대한 고용주로 역할하고 있고 앞으로도 이같은 역할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주도 성장모델에서는 외화획득의 일등공신은 중화학공업일 수밖에 없다』고 중화학공업의 경제기여도를 강조하며 제조업 부활론의 기치를 높이 올렸다.

반도체 장비업체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체의 수익성이 낮은 것은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가격이 곤두박질치기 때문이지 부가가치가 낮은 것은 절대 아니다』며 『초기 시장을 개척한 이들은 정보산업이 누리는 것 이상의 고수익을 맛본다』고 말한다.

물론 제조업체라고 해서 형편이 다 같은 것은 아니다. 전통적인 가전제품이나 식품·섬유류 제조업과 반도체 등 하이테크 장치산업과는 같은 제조업이라도 수익기반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하이테크 장치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받지만 전통 제조업은 평가절하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하이테크 제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는 전통제조업도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추고 있다.

대웅전기산업 관계자는 『일단 한번 투자하고 나면 한동안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치 않고 정보산업의 상품에 비해 소비자의 욕구가 천천히 변함에 따라 시장변화에 대응할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등이 최대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대웅전기산업은 실제로 전기압력밥솥을 국내 최초로 출시, 초기시장에서 상당한 고수익을 맛봤고 그때 올린 수익으로 재투자를 감행, 최근에는 홍삼중탕기라는 고부가제품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에 벤처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는 업체들 중에는 전통적인 제조업 기반의 업체들이 적지 않다. 유아용 콧물흡입기를 개발해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지인텍이나 혁신적인 두뇌개발시스템을 개발해 적지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대양이앤씨 등은 모두 전통적인 가전제품 제조업체들로 기술혁신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인 케이스다. 전통제조업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이나 감원 및 특별한 시스템의 도입없이 기존 시스템을 100% 활용하면서도 틈새시장 발굴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제조업 최대의 장점은 이처럼 기존의 시스템과 지식과 노하우를 살리면서도 고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데 있다. 물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틈새시장을 발굴하려는 노력과 기술개발에 대한 선도적인 투자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정소영기자 sy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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