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3일 낮 조선호텔에 50여명의 영국인들이 몰려들었다. 한국과의 산업기술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열린 「한영산업기술포럼」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450여명의 한국 재계 인사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들은 한국 인사들이 영국을 아직도 전통적인 산업국가로 그릇되게 알고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영국은 정보통신, 소프트웨어, 전자상거래 등 정보기술(IT)과 생명기술(BT)의 대국이다. 성인 인터넷 사용자도 800만명으로 유럽연합(EU)지역 내에가 가장 앞선다. 이들 정보 및 생명기술을 뒷받침하는 과학기술도 막강하다.
한 때 세계를 지배했다가 미국에 주도권을 빼앗긴 영국은 다시 첨단기술로 옛 영화를 누리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 이러한 영국의 첨단산업은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다.
7일 오전 대사관저에서 만난 찰스 험프리 주한 영국대사(54)도 이같은 인식이 얼마간 답답한 듯했다. 이 때문에 예정된 인터뷰시간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부임한 지 반년이 가까워옵니다. 그 짧은 시간에도 한국의 변화는 심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한국사회가 아주 역동적입니다.
한국에 온 것은 지난 73년 이후 27년만입니다. 매우 놀랐습니다. 발전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전자, 통신, 인터넷, 전자상거래 등의 발전속도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한국기업에 대해서는 잘 압니다.부임하기 전에 영국에 있는 한국기업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영국에 투자한 한국기업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투자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어떤 입장입니까.
▲현대전자의 반도체공장이 가동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세계 반도체산업 구조로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는 한국기업들의 신규투자가 활발합니다. 삼성SDS는 지난해 런던에 유럽사업본부를 설립했습니다. 기존에 투자한 대기업들도 설비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험프리 대사는 언젠가 「한국경제는 위기가 아니라 일시적인 위축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어려울 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 특유의 역동성과 교육열기가 다시 활력을 되찾게 하리라 믿습니다.
다만 기업과 금융분야의 프로세스에 대한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자유시장의 원칙 아래 한국경제가 확고한 뿌리를 내려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미 대내외에 개혁을 선언했습니다. 약속대로 진행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한국의 IT산업은 경제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됐습니다. 영국은 어떻습니가.
▲사실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한국인들이 영국의 IT산업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국은 전통산업은 물론 하이테크산업에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통신이 그렇고 전자상거래, 소프트웨어도 세계적입니다. 게임산업 역시 그렇습니다.
과학기술도 우수합니다. 세계 과학기술 논문의 9%가 영국에서 나옵니다. 영국 과학자들이 수상한 노벨상은 70회나 되는데 인구나 경제규모로 보면 세계 최고입니다. 복제 양 돌리에서 비아그라까지 과학적 성과가 다양합니다.
영국은 또 EU지역에서 가장 큰 인터넷 시장입니다. 통신비도 가장 쌉니다. 세계 게임SW의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기존의 전통산업에 이어 IT산업이 큰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국은 연구개발 능력이 우수하며 한국은 제조기술이 우수합니다. 두 나라가 협력하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으로 봅니다만….
▲같은 생각입니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연구개발(R&D)과 디자인 등에서 앞선 기술을 한국의 응용기술과 접목시킨다면 양국에 모두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이점에서 지난해 11월 한영산업기술포럼은 이러한 인식을 갖도로 하는 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한국에 투자하려는 기업들도 많아졌습니다. 양국간 인적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네트워크를 제3국에서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텐데요.
▲정보기술 분야는 아니지만 건설업 분야에서 영국은 디자인을, 한국은 건설을 맡아 다른 나라의 사업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다음달에도 영국의 경제사절단이 한국에 올 예정입니다.
-지난해 말 북한과 수교했는데 한국과 협력해 북한에 진출하려는 영국기업들이 있습니까.
▲아직은 초기 단계여서 구체적으로 밝힌 기업은 없습니다. 우리가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입니다. 앞으로는 활발해질 것으로 봅니다.
-IT산업이 발전하면서 전통산업이 다소 위축되고 있습니다. 영국은 어떻습니까.
▲한국만 그런 게 아닙니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같은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도 처음에는 IT기업과 전통기업의 격차가 컸으나 점차 균형이 잡힙니다. 원칙대로만 하면 한국의 전통기업들도 균형있게 성장할 것입니다.
-영국의 IMF 극복 경험이 한국에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중요한 것은 개혁에 대한 노력입니다. 영국도 70년대에 경험했지만 민영화와 같은 구조개혁과 적극적인 해외투자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해외투자 유치는 자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 나쁘게 볼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게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예전에는 노동조합이 해외자본 유치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투자 설명회에서 노조가 앞장서 홍보합니다.
-영국은 해외투자 유치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나라입니다. 어떤 성과가 있었습니까.
▲세계 제일의 기업이 오면 국내산업의 수준도 올라갑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R&D센터를 영국에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이 있으니까 영국의 소프트웨어산업도 발전합니다.
-EU지역에 진출하려는 한국기업에 조언한다면….
▲EU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려면 가장 먼저 「http://www.investukasia.com」과 같은 웹사이트(영국에 대한 아시아권 국가의 투자를 설명하는 웹사이트)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은 EU진출의 교두보입니다. EU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투자 가운데 40% 이상이 영국입니다.
영어를 쓸 수 있고 고도로 숙련된 노동력, 비용과 세금이 저렴한 사업환경 등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영국의 높은 과학기술과 연구개발이 세계적인 기업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EU에 진출하려는 한국기업들은 자기 분야에서 앞선 연구개발 능력이 있는 곳에 진출하면 좋다고 봅니다.
-경제블록이 심화되면서 보호주의의 가능성은 없습니까.
▲EU의 팽창이 한국과 EU국가간 무역장벽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영국은 세계 5위의 무역국이면서 세계 제2의 용역수출국입니다. 영국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미국보다 외국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는 자유무역주의의 선봉자입니다.
우리 정부의 추정치에 따르면 새로운 세계무역기구(WTO)라운드가 성공하면 세계 GDP의 1.4% 정도의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자유무역에 대한 원칙은 다른 EU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같은 상황을 잘 활용하면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큰 EU시장을 더욱 공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의 산업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아까 말한 대로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합니다. 통상사전달이나 세미나 등 경제교류가 더욱 활발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대사관은 영국에 통상사절단을 파견하는 한국 기업들을 적극 지원합니다.
영국에 대한 투자나 영국의 첨단기술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우리 주한 영국대사관 직원들이 기꺼이 돕겠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적극 홍보하려 합니다.
특히 한국의 기업들은 산학협동이 활발한 영국에 연구개발 센터를 두는 것이 경쟁력 향상 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영국의 연구개발 활동은 말 그대로 국제적입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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