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회의 디지털세상 이야기>33회-치맛바람과 디지털 시대

한국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하다. 이런 사실은 아마 우리 역사 가운데 만들어진 것 같다. 우리는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독특한 민족성이 형성되었다. 서부영화에서는 인디언이 쳐들어오면 아이와 여자를 숨긴다. 2차 대전을 그린 영화에도 독일 병정이 침략했을 때 아이와 여자들을 먼저 숨기고 남자들이 싸우다가 적군을 물리치고 난 뒤에 아이와 부녀자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나오는 장면을 감동적으로 본 기억이 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우리나라는 전쟁이 나면 대부분 남자를 숨기고 여자가 집을 지킨다. 같이 숨지도 않고 어머니와 아이들이 남아서 집과 재산을 지키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종족 보존과 가족을, 특히 남자를 돌보는 일에서는 체면이나 경우를 생각지 않고 극성스럽다할 정도로 충성스러웠다. 아마 재산을 지키려는 의욕도 남 달리 컸던지 싶다. 또 유교사상 아래서 억압받고도 말 못하는 아픈 가슴을 홀로 삭여야 하는 한이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한을 정식으로 정신병의 하나로 인정할 정도니, 우리만의 아픔이 유별난 것 같다. 이것들이 어우러져 삶 가운데 무서운 힘으로 분출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고무풍선을 터지기 직전까지 불어 놓으면 외부에서 조그만 자극만 있어도 터진다는 원리다. 이렇게 터지면 무서운 힘으로 풍선은 날아간다. 한국 여자들에게는 이러한 분출되지 못한 힘이 있다. 이런 힘은 남성보다는 더 억압받았던 여성에게 보다 많이 축적돼 있다. 이러한 힘이 적절히 배출될 때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자원 중에서 여성이 남성들보다 근본적으로, 상대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메달도 여자가 더 많이 따냈다. 박세리같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거나 양궁같이 세계적인 기록을 낸 사람도 여자들이다. 예술 분야에서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여성들이 상당히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바로 지난날 여성들이 남성들을 숨기고 집을 지켰던 그 억척스러움과 한이 지금까지 내려와 우리 여성들을 강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떤 사람은 우스개 소리로 바람 중에 제일 센 바람은 총풍도 아니고 북풍도 아닌 한국 여성의 치맛바람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치맛바람을 부정적인 의미로만 생각해 그 단어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바람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경우에는 무엇보다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위기에 봉착 했을 때 보여준 행주산성의 치맛바람이 바로 긍정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부정적으로 쓰여졌던 장모 여인의 사건도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를 쥐고 흔들었던 바람이었다. 또 한 예로 과외 열풍이 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그 헌신적이고도 극성스러운 자식사랑(?)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기 자식을 남보다 앞세우기 위해 온갖 것을 다 희생한다. 어찌 생각하면 지극한 사랑으로 보이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자식을 지식의 도구로 전환시켜 버리는 동전의 양면같은 부정적인 점도 있다. 양면 다 바로 한국 여성의 적극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본다. 이러한 바람들은 잘만 사용되면 21세기에 우리나라가 다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

하기 위한 좋은 발판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천연 자원이 아주 빈약한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경제적인 발전을 한 것은 우수한 인적자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적자원이 우리 힘의 원천인 것이다. 그 중 상대적으로 우수한 여성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우리나라의 장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문제다. 정부 차원에서도 여성에 대해 특별한 배려를 시작한 것은 정말 반갑고 바람직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디지털 시대는 기술과 시장이 하루가 멀다고 바뀌는 때다. 이 급변하는 시대에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개개인의 능력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다. 이 때 여성들의 잠재력을 건설적인 방향으로 폭발시킴으로써 우리나라가 네트워크 사회에서 재도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여성들의 억척스러움이 드디어 힘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김형회 (주)바이텍씨스템 회장(hhkim@bite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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