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좌절의 연속.」
올해 한국 벤처산업을 한마디로 함축한 말이다. 올초만해도 벤처업계는 새 밀레니엄을 맞아 한국경제의 희망으로 간주되며 절정기를 구가했지만 2·4분기부터 불거져나온 벤처거품론이 벤처위기론으로 확산, 연중내내 극심한 돈가뭄으로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급기야 하반기에는 정현준·진승현 게이트가 잇따라 터지면서 벤처회의론까지 등장한 실정이다. 격동의 2000년을 마감하며 한국 벤처산업의 현주소를 분야별로 3회에 걸쳐 점검한다. 편집자
「4중고.」
현재 국내 벤처기업들은 전반적으로 기술·자금·사람·마케팅 등 벤처비즈니스를 구성하는 4가지 핵심요소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없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 벤처기업의 「존재의 이유」인 기술력이 취약하며 비즈니스모델(BM)의 수익성이 취약하다. 극히 일부 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지만 대부분 취약한 기술력과 BM으로 투자가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자금 상황은 거의 심각한 수준이다. 금융시장 불안과 코스닥 침체로 벤처금융시장 경색이 연중내내 지속되면서 돈가뭄으로 상당수 벤처기업들이 고사 직전이다. 벤처비즈니스 특성상 3∼4차례에 걸친 외부 펀딩 스케줄에 따라 자금을 운용해야 하지만 펀딩 자체가 극히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다 투자기관들의 어려움도 마찬가지여서 절대자금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벤처캐피털 등 투자기관들이 소극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면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투자를 집행하는 탓에 벤처기업의 옥석구분이 본격화돼 경쟁력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코스닥에 새로 등록한 기업이나 극적으로 펀딩에 성공한 기업들은 콧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내년도 자금시장도 불투명, 그저 여유로울 수만은 없는 상태다.
인력문제도 여전히 벤처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구조조정이 다시 본격화, 실업률과 취업난이 IMF 때를 연상케 할 정도로 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벤처기업에 필요한 전문인력의 부족현상은 여전히 심각하다. 급격히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성대 홍정완 교수는 『현재 국내 e즈지니스 인력수요는 116만명에 달하지만 공급은 83만명에 그쳐 33만명이 가량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벤처붐 조성으로 물밀듯이 벤처로 유입됐던 대기업 인력도 최근들어 벤처위기론과 벤처회의론이 등장하면서 주춤해졌다. 벤처업계 관계자들은 『올초까지만해도 벤처붐을 타고 대기업 출신 고급인력들이 경쟁적으로 「벤처행」에 나섰지만 벤처회의론이 등장한 지금, 열기가 급격히 식은 상태』라며 『오히려 안정적인 대기업으로 유턴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마케팅면에서도 벤처업계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금융시장, 유가 및 환율 등이 불안해지자 기업들이 신규투자를 억제, 내수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이다. 그나마도 「180일」짜리 어음까지 등장, 벤처기업을 벼량끝으로 몰고 있다. 일부 정보기술(IT)업종에서는 「벤더 파이낸싱」을 조장, 벤처기업의 수주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수출이 유일한 돌파구지만 경험이 부족한 벤처기업들로서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한가닥 희망은 있다. 내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고,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벤처금융시장이 이달부터 서서히 살아날 조짐이다. 또 「벤처위기가 이제는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더이상의 악재는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어쩌면 한국의 벤처는 등록벤처 수 1만개 시대를 열 2001년부터가 시작이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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