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이단형 원장(53)은 흔히 국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엔지니어 출신답지 않게 비즈니스 감각을 갖춘 인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근 30년 가깝게 근무했던 시스템공학연구소(SERI)에서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의 전산화 프로젝트를 두루 수행하면서 고객들이나 사용자들이 진정으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감각적으로 체득한 데다 LGEDS시스템 부사장 재직기간에 세계적 정보기술(IT)업체인 EDS의 비즈니스 노하우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도 가졌다.
여기다 그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경영대학원 학위 과정과 CEO 과정을 거치면서 경영 마인드를 키웠다.
미국 아더 D 리틀 경영대학원과 버지니아 커먼웰스대학에서 경영학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LGEDS 재직기간에는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서울대 경영대학원 CEO과정을 수료했다.
물론 IT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에선 국내 어떤 전문가 못지않은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SERI 재임 시절에 한영 및 영한 자동번역 소프트웨어 개발, 의료보험 전국 네트워크 시스템 구축, 종합금융전산시스템 구축,소프트웨어자동생산기술 연구개발, 국산 주전산기용 소프트웨어 개발지원도구 개발, 조립형 실시간 운용체계(OS) 개발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또한 다중해상도 비디오장치, n차원 하이퍼큐브 생성을 이용한 브로드캐스트, 소프트웨어 문서의 계층 구조 및 관계를 이용한 소프트웨어 문서작성시스템 등 분야에서 국내외 특허를 갖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과 경험을 통해 그는 IT와 경영 분야를 두루 섭렵한 인물로 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이 원장은 「고객 우선주의」를 IT분야 공공 기관이나 업체들이 가장 중시해야 할 덕목으로 꼽고 있다.
최근 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취임사를 통해 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당부한 것도 바로 그것이다.
『소프트웨어진흥원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선 진흥원의 진정한 고객들이 누구인지를 먼저 파악하고 철저하게 서비스 정신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지고 소프트웨어산업이 명실상부하게 국가 기간산업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진흥원이 단순한 행정 서비스 기관이 아니라 전문성과 국제적인 소양을 갖춘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소신이다.
이 원장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보험·증권·은행 등 금융산업으로 대변되는 3차 산업은 물론이고 제조업, 농수산업 등 1, 2차 산업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소프트웨어 산업이 밑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지론이다.
이 원장은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e비즈니스, 멀티미디어, 객체지향, 소프트웨어 컴포넌트, 무선인터넷 등 분야의 기초기술을 이른 시일내에 확보해 소프트웨어의 국제 경쟁력을 가늠해보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진흥원이 소프트웨어 업계의 길잡이 역할을 맡아 소프트웨어산업 진흥에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 원장은 이미 미국, 일본,이스라엘, 인도 등 소프트웨어 분야의 선진 국가들이 대부분 국가적인 차원에서 소프트웨어산업 진흥기구를 설립, 운영하고 있거나 민간 소프트웨어 단체 및 컨소시엄의 활동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며 소프트웨어진흥원의 역할이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의 육성에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미국의 경우 카네기멜론대학 부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인스티튜트(SEI) 활동에 대해 미 국방부가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민간 소프트웨어 컨소시엄인 소프트웨어 프로덕트 컨소시엄(SPC)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원장은 현재 본사와 정통부, 정보산업연합회 등에서 공동 주관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대상」의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으로도 오랫동안 활약해왔다. 이때문에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기술적인 수준이나 문제점에 대해서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경우 아직 기술력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지만 예전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며 국내 업체들의 미래를 비교적 낙관했다.
다만 국내 업체들이 세계적인 업체로 성장하기 위해선 외국 소프트웨어 업계에 이미 활성화돼 있는 공동작업(co-work)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리나라 업체들은 기술을 공유하거나 다른 업체와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을 꺼리는 게 일반적인 경향인데 앞으로는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들과 제휴해 소프트웨어 기술을 공동 개발하거나 공동 마케팅 활동을 전개할 필요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시장을 독식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제휴업체와 「윈-윈」 게임을 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국내 소프트웨어 업체들에게 현재 가장 절실한 것은 시장의 니즈(needs)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흔히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기술적인 역량만 갖고 있으면 다 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시장의 니즈를 외면한 기술은 결국 사장될 것이라며 시장과 기술은 항상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이같은 그의 소신은 LGEDS시스템 부사장 재직기간에 빛을 발했다. 그는 부사장 시절 LGEDS시스템의 연구개발 분야를 책임지면서 「매출에 기여하는 연구개발」이라는 신념 하나로 일했다. 이를 위해 연구원들을 SI프로젝트에 직접 참여시키는가 하면 마케팅 교육도 시켰다. 이같은 신념은 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으로 일하면서도 유감없이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소프트웨어진흥원 원장으로 부임한 지 이제 겨우 일주일 조금 넘었다. 부임하자마자 업무 파악하랴 다음달 2일 열릴 예정인 국정감사 일정 때문에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그러나 이 원장은 소프트웨어진흥원에 대해 갖고 있는 특별한 애정과 인연 때문에 전혀 피곤하지 않다.
지난 96년부터 98년까지 정통부가 추진했던 소프트웨어산업육성 종합계획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소프트웨어진흥원의 발족에 간여했던 데다 소프트웨어진흥기구가 확고하게 뿌리를 내려야만 비로소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그동안 연구개발분야와 민간 기업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접목시켜 국내 소프트웨어산업을 국제적인 수준까지 올려놓겠다는 의욕에 가득 차 있다. 앞으로 이 원장이 소프트웨어진흥원을 어떻게 본궤도에 올려놓을지 소프트웨어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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