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기획> 불붙는 반도체 논쟁

국내 반도체업체들과 정책당국이 최근 D램 가격 하락을 계기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반도체 산업 위기론을 서둘러 진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경영진들은 기업설명회나 투자발표회 등을 통해 언론이나 투자가, 애널리스트 등을 상대로 반도체 가격 하락의 여파가 국내에 없다는 점을 열심히 설파한다. 산업자원부도 지난 20일 반도체 가격이 곧 상승해 수출전선에 문제가 없다고 발표하며 업계의 주장에 맞장구를 쳤다.

업계나 정부는 반도체 가격 하락이 국내 경제에 먹구름을 만든다는 시각을 잠재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가격 하락은 때마침 급등한 유가와 아울러 마치 경제위기의 양대 주범으로 취급받고 있다.

업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러한 진단에 난감해하고 있으나 주식시장 등에는 먹혀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반도체 가격 하락은 반도체 경기 둔화의 신호탄인가, 일시적인 해프닝인가. 반도체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반도체 가격 전망과 이로 인한 산업내 변화를 집중 조명했다.

◇ 끊임없는 반도체산업 위기설 = 위기설의 1차 진앙지는 지난 7월초 미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이 증권사의 반도체 분석가인 조너선 조지프는 『휴대폰 시장의 둔화로 수요에 비해 반도체 공급이 늘어나 가격 하락세로 접어들어 1년 안에 반도체 경기가 꺾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한마디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반도체업체들의 주가가 폭락했다.

그렇지만 골드만삭스·메릴린치·워버그 등 다른 증권사의 반박 보고서는 물론 반도체업체의 수익호조 전망 보고서가 잇따라 나왔다.

또한 부정적인 의견을 냈던 뱅크오브아메리카(BOA)증권의 리처드 허팅턴조차 자신의 예측을 후회하기 시작하면서 반도체 주가는 다시 오르고 있다.

2차 위기설은 이달초 반도체 국제 현물시장에서 나왔다. 특히 이번 위기설은 D램 시장에 초점이 맞춰졌다. 가격이 급락세를 탔기 때문이다.

여기에 메리츠증권을 비롯한 일부 증권사들이 D램 가격의 하락 장기세를 점치는 분석 보고서를 내면서 D램 업체들의 주가가 다시 하락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주가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삼성전자의 주가 하락은 증시와 국내 수출산업에 찬바람을 몰고와 국가 경제위기설로 번졌다.

D램 가격 하락세를 점치는 시각의 전제는 이렇다. D램 수요의 60%를 차지하는 PC시장의 성장세가 예상보다 둔화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현대전자·마이크론 등 주요 D램 업체들이 라인 신증설에 나섬에 따라 공급과잉이 이뤄지고 D램 가격은 적어도 내년초까지 하락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 가격 하락세가 장기화할 것인가 = 국제 현물시장에서 D램 가격의 급락과 일부 고정거래처에 대한 공급가격 인하 움직임을 놓고 보면 D램 가격의 하락세가 장기화할 것처럼 여겨진다.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분석이라는 게 반도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D램 수요의 PC비중 60%는 1∼2년 전에 비해 최소한 10%포인트 이상 줄어든 것. D램의 PC시장 의존도가 준 상태에서 PC시장의 둔화를 곧바로 D램 시장의 위기로 모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PC시장의 둔화는 미국 등 일부 선진국에 국한돼 있을 뿐이다. 아시아·중남미·동구 등 이른바 유망시장에서는 PC판매가 호조다. PC시장의 성장 속도가 전반적으로 둔화됐다는 것이지 성장률이 낮다는 것은 아니다. 평균 성장률은 앞으로도 14%에 이를 전망이다. 표1참조

올해 세계 PC수요만 놓고 보면 1억3500만대 수준으로 지난해에 비해 17%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또 최근 신가전·모바일네트워크 등의 폭발적인 성장은 D램 수요를 다변화하면서 PC수요의 둔화를 벌충하고 남을 정도다.

삼성전자·현대전자·마이크론 등 주요업체들이 최근 오랜 침묵을 깨고 라인 신증설을 적극 추진하는 것도 D램 시장의 성장세가 앞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에 따른 것이다.

현안인 가격 하락세에 대한 분석에서도 업체들의 시각은 외부 일부 증권사의 견해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전자의 경영진들은 『이달들어 가격이 떨어진 것은 대만과 독일 등 일부 업체의 재고물량 방출과 CPU공급 차질에 따른 일시적인 수요 위축이 겹쳐져 나타난 현상일 뿐 10월 이후 다시 반등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현물시장의 물량 증가에 따른 일시적인 조정국면이라는 분석이다.

업계는 또 전통적으로 PC수요는 상반기 45%, 하반기 55%로 하반기에 몰려 있어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 특히 올해 PC수요물량은 4·4분기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현대전자의 경우 컴팩·델·IBM 등 대형 거래처의 4·4분기 주문물량의 65∼70%밖에 소화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같은 공급부족은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표2참조

D램업계는 주력인 64MD램의 가격이 10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관측했다.

여기에 서버시장도 가열되면서 D램의 대용량화가 급진전해 D램 수요는 올해에 비해 내년에 더욱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국내 D램업체들은 최근의 하락한 가격도 지난 3월 중순의 최저점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3참조

만에 하나 가격 하락이 장기화한다 해도 그동안 감가상각을 끝내 수익성과 매출 확대에는 무리가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 적어도 경제불안의 요인은 아니다 = 반도체업체들의 불만은 최근의 일시적인 D램 가격 하락을 경제위기의 요인으로 덤터기 씌우려는 시각이다.

삼성전자의 한 중견 관리자는 『수급상황과 무관한 위기론으로 주가가 하락, 개인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봤다』면서 『물질적 피해보다도 D램 가격 하락을 마치 경제 전반의 위기로 보는 시각이 더 불쾌하다』고 말했다.

반도체업계는 다음달이면 자연스레 가격이 오를텐데 국무회의석상까지 가격 하락 문제가 오르는 것을 의아해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제품이 없어서 못파는 실정인데 정부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면서 『반도체 가격 하락을 걱정하기보다는 우리경제의 기본 틀을 튼튼히 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렇지만 수출로 먹고 사는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반도체 가격 하락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높은 관심은 당연하다. 지난 상반기에 반도체 수출은 모두 119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14.4%를 차지했을 정도다.

반도체 가격 하락은 업계의 분석대로 더이상 추락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설령 반도체 현물가격이 떨어지더라도 반도체업체들의 경쟁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된다. 하지만 반도체에 편중된 국내 수출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다. 이는 가격이 오른다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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