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3-신경제>사회문화적 변화-대변혁이 시작됐다

「신경제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IT나 인터넷 기반의 벤처붐이 일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신경제의 영향으로 산업이나 경제 패러다임은 물론 우리의 사회·문화적인 패러다임까지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우선 신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기업의 문화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노사관계의 변화다. 기존 경제체제 아래서는 사장과 종업원이 주종 관계, 일종의 수직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반면 신경제 아래서는 사장과 종업원은 수평적인 구조로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다. 이로 인해 결제 과정이 단순하고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신경제 아래서의 종업원들은 또 저마다 한 기업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으로 무장돼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종업원들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우리사주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아예 설립 당시부터 종업원들에게 지분을 배분하고 있다.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에서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관계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전문가들을 영입하기 위해 도입된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으로 인해 기업의 문화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기업의 주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할 수 있다는 매력으로 유망 벤처기업들에 우수한 인력들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 벤처기업에 인력을 빼앗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자극, 스톡옵션이 전 기업으로 확대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신경제의 확산은 또 기업들의 분산형 조직구조를 더욱 재촉, 각종 전문가그룹을 양산하고 있다. 즉, 경영을 총괄하는 최고경영책임자(CEO)를 비롯해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운영책임자(COO), 최고관리책임자(CMO),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웹책임자(CWO), 최고정보책임자(CIO) 등 분야별 최고 책임자가 잇따라 출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가하면 신경제의 출현은 딱딱하고 관료적인 기업의 문화를 자율적이고 개방적인 문화로 변모시키고 있다. 기업 구성원간내에서 오랜 관행처럼 여겨져온 직급이 능력에 따라 파괴되고 있으며 -이사님, -부장님, -차장님, -과장님 등의 고

전적 호칭이 파괴되고 새로운 호칭체계가 확산되고 있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도 신경제의 확산으로 인해 나타난 사

회·문화적인 변화다. 여성들은 특히 정보처리, 웹 디자인 등과 같은 섬세함이나 꼼꼼함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주가를 높이고 있다. 최근엔 여성 창업이 크게 늘어나 여성벤처협회가 발족되는 등 신경제 아래서 여성들의 행동반경이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정부조직내의 공무원들도 변하고 있다.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공무원사회의 특성상 변화에 민감한 게 현실이지만 신경제의 활성화로 벤처적인 사고와 문화가 빠르게 전파하고 있다. 연공서열보다는 능력이 승진이나 승급의 주요 포인트로 바뀌고 있다. 신경제에 익숙한 IT, 인터넷 등 벤처문화에 익숙한 전문가들은 과감하게 옷을 벗고 민간기업으로 빠져나오고 있다.

안방에서 PC나 인터넷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는 재택근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도 신경제가 가져다준 우리 사회의 변화된 모습이다. 재택근무는 그동안 작가 등 프리랜서형 직업을 가진 특정그룹으로 한정됐으나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인터넷의 진화로 다양한 직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보급대수가 2700만대을 넘어선 휴대폰이나 차세대 IMT2000을 이용하는 시대가 도래해 모바일 데이터 및 동영상 송수신시대가 열릴 경우에는 이같은 재택근무가 더욱 본격화할 전망이다. 실제로 이미 벤처기업 중에는 노트북이나 팜톱PC, PDA, 웹보드, 인터넷폰 등 각종 이동통신단말기를 이용해 가정이나 달리는 자동차에서 업무를 보는 이동형 근무를 채택한 곳이 적지 않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신경제는 또 전세계를 하나의 생활권, 즉 지구촌화를 가속화함으로써 많은 비즈니스맨들의 생활 패턴 변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낮에는 국내업무를 보고 밤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거래선과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업무를 볼 수 있는 24시간 업무체계가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식이나 채권, 외환거래에 익숙한 금융인들의 경우 밤시간을 활용해 인터넷으로 국제금융정보를 검색하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다. 벤처기업인들 역시 휴가중에도 인터넷이나 휴대폰으로 업무를 보는 세태가 됐다.

또 신경제로 인해 모바일 단말기와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활용, 최신 정보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가 양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고도의 컴퓨터 및 인터넷 기술을 바탕으로 사이버상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국제적인 해커로 이름을 날리는 새로운 세대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탁월한 기술력과 정보력을 인정받아 높은 몸값을 받고 기업에 스카우트돼 맹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신경제가 확산되면서 나타난 이같은 사회·문화적인 변화들은 너무도 빨리 세력을 넓히면서 기존 문화와의 갭(gap), 이른바 아노미현상으로 적지 않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인터넷이나 IT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들이 느끼는 상대적인 소외감과 박탈감이다. 국내만해도 이미 급변하는 IT기술을 따라가지 못해 「왕따」 취급을 받는 데서 발생하는 일종의 「테크노스트레스」가 직장내에

서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즉 80년대 중반부터 PC보급이 급증, 어렵게 손가락을 써가며 컴퓨터 키보드에 익숙할 만하니까 어느새 마우스세대로 넘어가고 PC통신에 재미를 붙일 만하니까 어느새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있는 탓이다. 이처럼 신경제가 가져다준 세대간의 벽은 가정에서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인터넷, 웹에 익숙한 자녀와 PC통신을 겨우 해내는 부모들간의 괴리는 부모와 자식간에 대화를 단절, 가족간의 끈끈한 정을 메마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모바일 기술의 발달로 인

한 재택이나 원거리 비즈니스 경향은 또 기업 구성원간의 아날로그적 접촉을 차단, 기업 조직 구성원간의 팀워크를 저해하고 있다.

세대간의 차이뿐만 아니라 신경제가 도시, 특히 수도권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지역간, 계층간의 소외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고부가 지식집약산업인 벤처산업의 서울 등 수도권 편중은 심각한 수준이다. 자연히 부의 분배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 사회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다.

신경제의 핵심인 벤처문화의 확산도 긍정적인 요인 못지 않게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벤처기업가나 종업원, 투자기관이나 투자가 등 전방위에 걸쳐 만연된 「일확천금」을 노리는 현상이다. 벤처비즈니스는 근본적으로 단기간에 고수익, 이른바 「대박」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에 비정상적인

방법이나 편법을 사용, 일확천금을 노리는 「모럴헤저드」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또 개방적이고 자유분방한 벤처문화로 인해 전통기업 종사자들의 사기가 떨어져 전체적인 생산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벤처기업이 코스닥에 등록, 시가총액이 수천억원에 달해 종업원들이 수억원의 거금을 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저 월급에 만족했던 전통기업 종업원들의 사기저하가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신경제가 가져온 최근의 새로운 사회·문화적 현상들은 너무도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폭이 커서 모든 세대와 계층이 이를 다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그러나 경제주체들이 이젠 사회·문화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신경제의 순기능을 보다 활성화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요구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중배기자 jb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