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가 추진하려던 석유 B2B 사업이 SK를 비롯한 국내 정유 4사의 반발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석유공사는 당초 정보기술(IT) 업체인 CA, 삼일회계법인, 한국생산성본부와 함께 24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석유 B2B 마켓플레이스를 위한 합작사 설립 조인식을 갖고 이 사업을 본격화할 예정이었으나 전날인 23일 일정을 급작스럽게 취소시켰다.
이번 일정 취소의 배경에는 정유 4사가 B2B 합작사 설립의 운영주체에 대해 반발을 하면서 참여거부 의사를 밝히자 석유공사측이 지분 문제 등 이전까지 합의했던 양해각서 내용을 다시 재검토하기로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상황이 단순한 운영주체 문제가 아니라 국내 석유업계를 장악하고 있는 정유 4사의 기득권 지키기와 관계부처의 미온적인 태도, 석유공사의 눈치보기식 행정이 빚어낸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일고 있어 주목된다.
석유공사가 추진하려던 석유 B2B 사업은 국내는 물론 해외 정유회사 등 석유 공급사와 전국의 주유소 등 석유관련 도소매업자들이 대거 참여해 역경매 방식으로 석유를 거래하는 모델이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거래를 하게되면 도소매업자들은 품질이 우수한 유류제품을 가장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을 수 있게 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등 이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실제 이같은 마켓플레이스가 활성화되면 기존 주유소 폴사인제를 통한 브랜드 인지도 위주의 시장경쟁구도가 무너지고 치열한 가격경쟁이 이뤄지게 돼 국내 석유시장을 좌지우지하면서 기득권을 갖고 있는 정유업체들로서는 결코 반갑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따라서 정유 4사들이 반발하는데는 이같은 이해관계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SK, LG, 현대, S오일 등 정유 4사는 핵심적인 국가 기간산업 전자상거래 사업을 CA라는 외국계 업체가 주도하는 것은 대외의존도를 심화시키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들 4사의 말처럼 이번 석유 B2B합작사는 당초 석유공사가 50%에 가까운 지분으로 대주주 역할을 하고 CA는 30% 안팎의 지분만을 갖기로 했다가 이후 협의과정을 통해 23일 이전의 최종 양해각서에는 CA 지분이 가장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CA가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당초 이 사업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인 석유공사가 정유 4사의 반발을 의식, 이 사업을 주도하는듯한 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초기 지분없이 출발하겠다는 주장을 하면서 비롯된 것. 따라서 지분만 참여하고 자사의 솔루션을 이 마켓플레이스에 적용해 전 세계적인 참조사이트로 삼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CA가 특정 국가의 기간산업인 석유 B2B사업에 경영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석유공사 역시 초기 지분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추후 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지분을 다시 인수하고 대주주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고 있어 이들 4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에 대해 한국석유공사측은 지분, 경영권 등 민감한 문제를 해결하고 이들 정유 4사를 충분히 설득시켜 석유B2B 사업을 빠른 시일안에 재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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