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400) 벤처기업

IMF<18>

그날밤에 나는 우는 그녀를 겨우 달래서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회사에 출근했을 때 그녀는 출근하지 않았다. 아직 퇴출 명단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였으나 그녀는 나오지 않았다. 여비서 미스 박을 불러 문 과장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홍보실에 있는 문 과장 있지. 사귀는 남자 있나?』

박 비서는 웃기만 할 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애인이 있다고 하던데 알고 있어? 유전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하던데.』

『문 과장 애인 없어요. 유전공학을 하는 사람은 문 과장 남동생으로 지금 학생이에요.』

『남동생을 가르치는 교수가 애인인지 모르잖아?』

『문 과장 애인은 왜요? 누가 그래요?』

『아냐, 아무것도.』

문 과장은 결혼한다는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애인을 만들어서 말하곤 하였다.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다른 일에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오직, 애인과 결혼 문제에 있어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구조조정 과정 가운데 홍보실의 문 과장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이번에는 연구실의 홍 차장이 덮쳤다. 퇴출 명단이 공개된 다음날이었다. 비서를 통하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온 홍 차장은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말했다. 한낮인데도 술을 마셨는지 그의 얼굴이 벌겋게 붉어 있었다.

『최 사장, 나만 믿는다고 매달릴 때는 언제고 이제 단 것은 다 빨아먹고 뱉는 거요? 퇴출이라니?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요?』

그를 믿는다고 매달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밤샘을 하면서 한참 연구에 몰두할 때 그를 격려하기 위해서 했던 말이었을 것이다. 나는 기술자들에게 믿는다는 말을 곧잘 사용했다. 그것은 당사자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해서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었오. 회사를 살리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오.』

『나는 회사가 어려운 시절에 밤을 새우면서 일했던 사람이오. 그런 나를 자를 수 있소? 당신 학교 후배라고 하는 윤대섭은 대우를 해주고 말이야. 그 놈이 내 상사라는 것이 항상 아니꼬웠지만 사주 학교 후배니까 그러려니 했지. 그런데 이젠 노골적으로 그놈만 감싸고 난 내쫓아? 대관절 어디에 기준을 세워 나를 내쫓는다는 거야?』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