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연구원 공동화현상 가속

『올들어서만 주위에서 6명 이상이 벤처기업 사장으로 변신했다. 같은 연구실에 있는 후배연구원들도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벤처창업에 나설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다.』(ETRI H박사·책임연구원)

『연구소측으로부터 기술을 이전해 벤처기업을 유치하도록 권유받았다. 하다보니 벌써 4개 기업이 내 기술을 이전받아 연구소 벤처보육센터에 입주했다. 이들에게 일일이 기술을 지도하다보면 하루가 모라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연구에 몰두하고 새로운 연구성과가 제대로 나오겠는가. 차라리 벤처기업을 차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창업을 결심했다.』(KIST K박사)

출연연이 큰일났다.

출연연에 벤처바람이 불면서 그동안 출연연의 기둥역할을 하던 실력있는 연구원들의 이탈현상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연구원들의 이탈현상은 지난 98년 IMF관리체제 이후 추진되던 출연연 구조조정 때와는 달리 유능한 연구원들을 중심으로 연구원창업이 본격화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정부의 연구원창업지원제도 등 현재 추진중인 제도전반에 걸쳐 전면적인 검토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초·산업·공공기술연구회에 따르면 올들어 연구소를 떠나 벤처창업이나 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긴 연구원은 연구소별로 많게는 10명이 넘어서고 있으며 창업을 준비하겠다는 연구원도 출연연마다 30∼40명에 이르고 있다.

4300여명에 이르는 출연연 연구원들의 숫자에 비해 미미할 정도지만 전문분야 권위자를 중심으로 이탈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각 출연연이 내규로 마련해 시행하고 있는 연구원창업규정에 따르면 출연연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연구원창업자격을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으로 하고 창업적용범위를 신기술 또는 노하우, 아이디어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대부분의 출연연들이 당사자가 개발한 연구성과를 연구원창업을 통해 실용화할 경우 상당기간 연구소의 지적자산인 기술특허 등에 대한 기술사용료를 면제해주는 등 파격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연구원창업을 유도하고 있다.

따라서 고도의 기술과 연구개발경험을 가진 실력있는 연구원들이 잇따라 연구원창업형태로 연구실을 떠나 창업대열에 합류, 출연연 내부에서조차 쓸 만한 연구인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새로운 고급 연구인력을 확보하기는 하늘에서 별따기다.

실력있는 연구원들이 벤처기업을 선호하는데다 벤처기업 수준으로 연봉을 맞춰달라는 연구원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과학기술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벤처창업을 통해 고용 및 산업생산을 늘린다는 명분아래 연구원창업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나 코스닥시장 등 벤처기업의 성공사례가 잇따라 알려지면서 실력있는 연구원들이 연구소를 떠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자통신연의 한 책임연구원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연구원들이 연구소를 떠나는 것을 실력이 없어 쫓겨나는 것으로 여길 정도로 부끄러워 했으나 최근들어서는 오히려 연구소에 남아 있는 사람이 실력없는 것으로 평가될 정도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사업화가 어려운 기초연구분야 연구원만 연구소에 남아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 병역특례연구요원으로 연구소에 근무하고 있는 유능한 젊은 연구원들의 대부분이 본연의 연구 대신 의무기간이 끝나는 이후 벤처창업을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민의 세금으로 투입되고 있는 연구개발비가 연구원들의 벤처창업을 위한 연구비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병역특례연구요원으로 선발돼 올해가 마지막 해인 KIST의 C박사는 『정부가 연구원창업을 독려하면서 내놓은 각종 지원책에 따라 본연의 연구보다는 창업을 전제로 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말하고 『결과적으로 정부가 막대한 연구개발예산을 투입해 연구원들의 개인기업 제품개발을 전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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