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며칠 전 벤처기업의 기술이사가 보내온 글의 제목이다. 이 글에는 국내 어느 대기업이 VoIP(Voice over Internet Protocol)사업을 본격화할 목적으로 세계 최대의 인터넷폰 서비스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에 대한 강한 불만이 담겨 있었다.
인터넷폰 붐이 일면서 국내 벤처기업들이 VoIP솔루션을 속속 출시하고 있지만 대기업이 국내 벤처기업을 외면한 채 외국 업체와 제휴를 맺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국내 벤처기업들이 IMF체제를 어렵게 견뎌내면서 수입대체 또는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라는 주제를 놓고 밤을 지새가며 땀을 쏟고 있는데 대기업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 외국 기업과 제휴한다면 국내 벤처기업은 설 땅을 잃게 된다는 주장이다.
특히 국내 벤처기업들의 상당수는 이미 국내외 통신서비스사업자에 VoIP에 관련된 솔루션을 공급, 기술력을 인정받았고 외국 기업들까지도 투자 및 제휴 의사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이와는 정반대로 국내 대기업이 눈앞의 이익을 목적으로 외국 업체와 손잡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기업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손쉽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외국 기업과 제휴하는 것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최근 전자상거래, 인터넷 검색서비스 사업에서 큰 폭의 성장이 예장되자 대기업들은 외국 굴지의 서비스업체와 제휴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올들어 수천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벤처기업 육성 및 투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앞다퉈 밝히고 있는 점을 상기한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벤처기업 육성을 주창하면서 뒤로는 시장장악을 위해 외국 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일부에서는 『벤처기업 투자는 단순한 기업 자산증식 수단이 아니냐』는 오해도 하고 있다.
이런 오해를 받지 않으려면 국내 대기업들은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라는 본질적인 목표가 퇴색하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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