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토털 솔루션은 없다

대학 정보화 전문업체인 K사는 지난해 한 지방대학에 교육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다른 프로젝에 비해 2배 이상의 자금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대학이 대그룹 계열사라는 이름만 믿고 초기 프로젝트를 S사에 맡긴 것이 화근이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자 S사는 대부분의 실제 구축업무를 여러 중소 하청업체에 나누어 맡겼고 전체적인 시스템 구성에 상담을 벌였던 책임자는 계약 체결 이후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결국 당초 계획했던 정보시스템은 구축되지 않았고 대학은 S사에서 계약금을 돌려받아 중소 전문업체인 K사를 새로운 사업자로 선정했다.

『그래도 국내 대표급 SI업체가 수행했던 프로젝트라는 생각에 보완작업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 잘못이었다. 막상 시스템 수정 작업에 착수해보니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결국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고 이 과정에서 비용은 2배 이상 들었다』는 게 K사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국내 SI 사업자 수는 150여개에 이르고 시장규모는 6조8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상위 5개 업체가 전체 시장의 50% 이상을, 중·상위 20위권내 회사가 87%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업체들은 대형 SI업체의 하청업체다. 산업구조적이면에서는 분명히 기형적이다.

여기에 대다수의 국내 SI업체들은 자신들의 전문적인 능력과 자원을 무시한 채 종합 SI업체를 표방함으로써 시장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국 SI업체들은 자체 기술력과 제품에 기반한 솔루션의 제공이 아니라 외국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단순 결합해 공급하는 형태도 「토털 솔루션」이라고 말한다. 겉으로는 뭐든지 다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고객 요구를 종합적으로 파악해 최적의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외국계 컨설팅 업체 한 임원의 말이다.

중소 SW업체들도 SI업체들의 토털 솔루션 주장에 회의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국내 SI업체들이 「종합 솔루션의 제공」이라는 명분 아래 대부분의 정보시스템 분야에 손을 대는 것은 병원 신축을 맡은 건설업자가 침대와 책상도 만들고 심지어 의료기구까지 직접 공급하겠다고 주장하는 것 이상으로 어불성설』이라고 꼬집는다.

따라서 국내 SI업계 구성을 전체 시스템 설계와 종합적인 프로젝트 관리능력을 갖춘 종합 SI업체와 특정 분야에 전문 능력을 지닌 전문사업자로 구분해 수요자가 사업 규모나 내용에 따라 가장 적합한 업체를 쉽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종합·전문 SI업체의 협력이 필수적이므로 입찰 제안시 업체간 협력관계 제시를 권장하고 기존의 협력(컨소시엄)에 의한 프로젝트 수행실적도 사업자 선정 점수에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하지만 다른 산업 분야와 마찬가지로 국내 SI시장에서 대형 업체와 중소 전문업체는 동반자적 협력 관계라기보다는 단순 하청의 상하 종속관계로 인식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 전문업체들은 『실제 프로젝트 추진과정에서 하도급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원·하청업체의 갈등이 한두 가지가 아니며 이같은 시장구조는 대형 SI업체와 중소 협력업체의 부빈부 빈익빈 현상만 가중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종합 SI업체와 전문업체는 서로 독자적인 사업·기술 영역을 확보해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현재 대형업체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 국내 SI시장의 무게중심을 다시 바로 세우는 작업부터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업체의 경우 특정 분야의 기술 전문화로 시장에서 지위향상을 꾀하고 대형 SI업체들은 더욱 큰 밑그림 속에서 자체 인력과 전문업체의 기술 자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통합, 활용할 수 있는 노하우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상돈기자 sdj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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