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흘간의 휴가를 신청했다. 일요일이 끼었기 때문에 나흘간 쉴 수 있었다. 모스크바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타샤와 나는 국내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레닌그라드로 날아갔다. 두어 시간 후에 레닌그라드 공항에 도착했는데, 그곳의 날씨는 맑았다. 우리는 이 도시를 가로지르면서 바다로 이어진 네바강 기슭의 호텔에 묵었다. 호텔 종업원은 우리가 신혼여행을 온 것으로 알았다가 방을 각각 잡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도시의 옛 이름은 페테르부르크입니다. 시인 푸슈킨은 이 도시를 가리켜 「유럽을 향해 열린 창」이라고 했어요.』
실제 레닌그라드의 첫 인상은 예술의 도시를 연상시켰고, 모든 건물이 유럽풍을 띠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대리석으로 건조된 18세기 또는 19세기의 바로크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넓은 유리창을 통해 네바강과 도시의 한쪽을 바라보면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그녀는 여행 안내자처럼 도시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이 도시가 생성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약 300년전 역사상에 이름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가 1700년 무렵에 북방전쟁에서 스웨덴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요새를 세우고, 이곳에 항구도시를 만들어 발틱해로 나가는 출구로 사용했어요. 그리고 1712년에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어요. 표트르 1세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 이름을 페테르부르크라고 지었어요. 19세기 전반에 이 도시는 서유럽의 문화가 밀려들어왔는데, 건축양식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도 밀려들었지요. 그후 금세기에 들어와서 레닌이 카를 마르크스의 이론을 가지고 들어와서 혁명을 시도한 곳이 바로 이곳인데, 그 후 1924년 이 도시 이름을 레닌그라드로 바꾸었어요. 이 도시는 2차대전 중에 독일군에 의해 900일동안 포위를 당하고도 견디어냈어요. 그로 해서 민간인과 군인 약 80만명이 죽었는데, 그들이 영예롭게 도시를 사수한 것이지요.』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제일 먼저 레닌그라드 외곽에 있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이 있는 마을을 푸슈킨의 마을이라고 불렀다. 푸슈킨이 이 마을에서 잠시 살았다고 하였다. 소련인들은 시인 푸슈킨에 대해서 상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푸슈킨을 민족의 자랑으로 생각하는데,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러시아는 푸슈킨이 있다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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