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우리 기업에는 구조조정과 맞물려 여기저기 벤치마킹이 유행하고 있다. 벤치마킹은 잘 나가는 기업의 성공비결을 배워 경쟁력을 높이자는 데 목적이 있다. 사실 이런 발상은 어제 오늘에 생긴 일이 아니다. 좀 괜찮다 싶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따라하기 잘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온갖 탈법 등 엉뚱한 길로 들어서 나라의 장래마저 어둡게 하는 사건들이 많다. 다른 산업은 다 제쳐놓고 소프트웨어(SW)·음반 같은 지식·문화산업은 그 절정을 달리고 있다.
방송 프로그램이나 CF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어린이 대상 놀이터를 둘러보아도 개성 없는 닮은꼴들은 늘어만 가고 있다. 한 방송국이 머리를 짜내서 특이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기다렸다는 듯이 경쟁사에서도 유사품이 떠오른다. 코미디 프로가 그렇고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급기야 좀더 자극적인 남의 뒷조사나 특수상황에서의 반응상태를 알아보는 프로그램까지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요, 변태적인 사디즘·마조히즘을 부추기는 작태다.
이들 프로그램 중에는 상당수가 외국 것의 모방품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국내외의 100여개 방송채널이 안방문화를 바꾸고 있다. 이러다간 엄청나게 높아진 시청자의 안목을 못따라가는 우리 문화, 우리 산업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불을 보듯 뻔하다.
영상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이 나돌자 대기업들이 이 투기성 강한 사업에 요란스레 참여한 것이 불과 2, 3년 전의 일이다. 그러다가 이제는 새로운 구조조정을 한다고 썰물 빠지듯이 손을 떼고 있다. 진퇴가 너무도 신속하고 즉흥적이다.
21세기가 멀티미디어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공론화되자 어느새 우리나라 주요 시·도 지방자치단체치고 멀티미디어 단지 조성에 관심이 없는 곳이 없다. 이 분야에서 일찍 눈을 뜬 춘천시가 조직내에 지식문화산업국을 신설, 보다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사업추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에 속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시간과 공간의 벽이 무너져 있는 정보사회에서 확실한 생존비결은 독창성과 신용을 다지는 일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개성 없이 남을 모방하는 2, 3등은 발 붙일 자리가 없게 된다. 남다른 창의력을 발굴하는 일이나 도덕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신용의 확립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많은 시간과 투자 그리고 전문성이 결집된 고된 과정을 거쳤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시먼튼 교수는 「천재의 기준은 참신한 연관능력」에 있다고 했다.
국가의 장래가 걸린 문화산업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먼저 모처럼의 기회를 만나 용암처럼 분출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감성적 특기를 보다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끌어내는 일이 긴요하다. 벤치마킹 하나라도 새로운 발상,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담는 데 힘을 써야 한다. 그 첫 걸음으로 후발자의 취약한 환경극복을 위해서라도 현장경험을 쌓아온 전문가의 결집을 통해 지혜를 모으고 경험을 공유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야만 한다. 마침 영상시대의 변화에 대응해 전국 대학에서 경쟁적으로 멀티미디어 학과가 신설되고 있고 또 관련 교수들과 현장 전문인력이 중심이 되어 멀티미디어 학회나 기술사회가 만들어진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부설 정보통신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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