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보화 정책에 구심점이 없다.」
새천년을 앞두고 국가의 정보화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1세기 국가 사회의 비전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지식기반 국가의 건설」이다.
그러나 미래의 국가 운명을 걸고 대통령까지 나서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국민」을 주창했지만 주무부처의 실효성 있고 생산성 있는 정책의 수립과 시행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식사회를 외치면서 산업사회적 시각의 관주도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부처간 연계성이나 협조체제가 미약한 나홀로 정책이나 사업 주도권 다툼양상의 난맥상만이 난무한다.
관주도 정책의 대표적인 본보기가 바로 최근의 초저가 인터넷PC 보급계획과 소프트웨어 종합유통회사 설립계획이다.
이 가운데 국민PC 보급계획이 비난받고 있는 이유는 정보화 정책의 본류인 질적인 측면, 정보 소비자의 수요적 측면, 사회문화적 측면 등을 무시한 물량공급(실적) 위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업체 선정을 마친 소프트웨어 종합유통회사 사업 역시 소프트웨어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직접 공급(유통)에 개입하겠다는 것이 골자인데 막상 관련업계가 이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어 그 난맥상을 짐작할 만하다.
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싼 부처간의 갈등도 끊임없이 지적되는 문제다. 부처간 갈등은 중복투자와 정보화 정책의 우선순위체계에 대한 붕괴, 지방정보화 낙후 등 여러 문제점들을 야기하고 있다.
실제 정보통신부를 비롯, 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행정자치부 등 부처간의 영역다툼은 각종 정책에서 빠짐없이 나타난다. 벤처 및 창업지원 정책들의 경우 부처간 중복투자는 가짜 벤처까지 만들어내는 수준이고, 이름만 다를 뿐 부처별로 설립하고 있는 이런저런 지원센터는 공급초과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전자상거래·기술이전센터·행정정보화 사업 등에서 부처간 관할다툼은 끊이질 않고 있다. 심지어 어느 한 부처가 특정 정책을 발표하면 경쟁부처에서 맞불을 놓는 유사 정책을 내놓곤 하는 실정이다.
정보화는 단순히 기술적 혹은 기능적 요소가 아니다. 또한 정보화는 산업적 측면과 함께 사회적·정치적 측면에서도 디지털 민주주의를 위한 의미를 갖는다.
정부의 정보화 정책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일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과연 국가적 정보화 비전은 있는가, 나아가 비전을 책임지고 수행하는 추진주체는 있는가 하는 의구심들이 바로 그것이다.
정책의 난맥을 시정할 대안으로 우선 민간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는 고위 지식관리담당자(CKO)나 고위 정보관리담당자(CIO)제도를 정부내에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CKO와 CIO는 기업내 지식경영 및 정보분야 최고관리자로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그 역할을 맡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지식경영의 조기 정착을 위해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별도의 주체를 둘 수도 있다. 미국 정보화정책 수립의 정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앨 고어 부통령을 연상하면 국가CKO나 국가CIO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각 부처에도 이러한 조직체계는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현재 부처마다 존재하는 관료형 CIO가 아니라 부처별로 수립하는 정책들의 1차 검증을 담당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CIO나 CIO조직을 두는 것이다. 부처별 CIO나 CKO제도 도입이 요구되고 있는 것은 특히 국가의 중요 정책이 몇몇 공무원의 책상에서 검증절차 없이 수립되고 시행되는 현재의 허술한 정책집행 과정을 보완하기 위해서다.
CIO나 CKO가 다양한 주변 인재 풀을 이용해 정책의 다단계 검증을 지휘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제도가 될 것이다.
민간 전문가를 아웃소싱하는 개방형 임용제와 정책실명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정책자문위원회 등도 적극적으로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또 다른 안으로는 올 봄 제2차 정부조직개편에 적극적으로 검토됐던 「지식정보위원회」의 설치를 들 수 있다. 당시 개편안에서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면서 정부를 통합·조정해 나갈 수 있는 힘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대통령 직속하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같은 기구가 설치될 경우 그 장이 자연스럽게 국가CKO나 국가CIO를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정보화 정책의 방향도 산업사회형에서 21세기 지식사회형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이제까지의 정보화 정책이 앞서 언급한 초저가 인터넷PC 보급계획에서 보여지듯 관련산업의 육성, 즉 공급 위주의 물량투입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점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그 대안으로는 정보의 수요자를 육성하는 방향, 정보산업 육성정책이 아닌 정보화 촉진정책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 등이 제시되고 있다.
정보화 주무부처인 정통부의 비끼어나간 정보산업 육성정책과 산업 육성정책의 주무부처인 산업자원부간 조정도 시급한 문제다.
<김상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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