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244)

 그 순간 나는 내가 시작한 사업이 성공했음을 느꼈다. 한국의 공단을 돌면서 자동 시스템을 설치하라는 설명회를 갖는 등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겨우 두 곳에 설치했지만 수입은 모두 일백만원을 넘지 않았다. 그것에 비하면 일본에서 흥정하는 이 일이 훨씬 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 시장이 컴퓨터산업을 비롯하여 모든 산업이 앞서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이미 자동 시스템이 보편화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설득시키기 훨씬 쉬웠는지 모른다.

 내가 침묵하고 있자 요시다 공장장이 덧붙였다.

 『우리는 더 이상 줄 수 없습니다. 우리 회사 경영진의 지시는 특허권을 사는 방향으로 하라고 했지만, 선생이 특허권을 팔지 않겠다고 하니 사용권을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하청 주어서 우리가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이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 오십만 달러 산출 근거는 우리가 일년에 십만개씩 만든다면 오년 동안 오십만개를 만들 것입니다. 개당 일 달러씩의 로열티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만나기 전에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결론을 내려놓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결론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나를 데리고 장시간 논의했다. 그것은 고도의 협상 기술이었고, 처음으로 접하는 나로서는 배워야 할 협상 테크닉이었다. 그들은 내 스스로 결론에 도달하도록 유도하였고, 그 결론에 도달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결정적인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결국 오십만 달러에 합의를 보았다. 나는 자동제어장치 프로그램 기술을 넘겨주고, 그것을 5년 동안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며, 그 동안 제작하는 데 기술적인 지원을 해준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다이묘 주물의 최고경영자 결재와 내가 개발한 소프트웨어의 검증 절차가 남아 있었다. 나는 일주일 후에 다시 일본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 동안 다이묘 섬유기기 제어장치의 호환을 위해 프로그램을 보완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것은 그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작업을 일주일 만에 완성시킬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함께 일하는 한용운과 오준호를 독려해서 밤을 새우면서 작업을 하였다. 일본 업체와 사용권 계약을 맺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무척 기뻐하였다. 처음 나의 전화를 받고 관심을 가졌고, 그리고 공항으로 나와서 나를 안내한 후쿠오카 과장은 자사와 계약이 맺어지게 되자 무척 기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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