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것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지만 이 점은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절대 「노」라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아주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합니다. 처음 그들을 대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해결된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부할 생각이 있으면 당신에게 더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일본인 기업가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맞는 말이었다. 적어도 일본인들과 거래를 하면서 거부할 때 더욱 친절하게 대해 주어서 잘못 착각하는 수가 있었고, 그들은 결코 「노」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나쁜 의미로 해석하면 그들의 이중성이었고, 좋은 뜻으로 생각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거절하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이묘 주물공장에서 생산되는 섬유기계는 그 크기가 다양하지만 대체로 연간 10만 기기 정도 생산하였다. 그 기기에 부착하는 제어장치 역시 10만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의 제품을 일괄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사용할 의사를 보였다.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컴퓨터 분야에서 일본 제품이 우수하다는 우월성이 깨어진 것에 대한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고, 그 이유를 물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이라고만 대답했다. 그것은 기존 거래처를 단절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었으나 타당한 변명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의 기술을 활용하다가 언젠가는 그들의 자국 제품으로 바꾸려는 차선책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시제품을 만들기는 했지만 대량 생산을 할 경우 그것을 제대로 납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실제 나는 하드웨어 부분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이를테면 프로그램 회로 카드를 연간 10만개 만들어 납품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내가 개발한 카드를 만들 수 있는 곳이란 청계천 세운상가의 바이트숍이었는데, 그곳에서도 영세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을 할 만한 곳은 없었다. 여러 곳에 나누어 준다면 어느 정도 해결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면 제품의 질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그것을 대량생산해 낼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업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래서 공장장 요시다는 기술을 팔 수 있느냐는 제의를 하였다.
그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소프트웨어 분야에는 기술만을 팔고 있는 곳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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