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절전형 가전> "절전형 가전"기술 전쟁 시작됐다

전기도둑을 잡았다.

 현재 TV에 방영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가전업체 광고의 테마다.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치열한 신제품 개발경쟁을 벌이는 국내 가전업계의 화두가 최근 절전형으로 모아지는 듯한 모습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미 절전모드에서의 사용전력이 20W 내외인 절전형PC와 초절전기능을 선택할 경우 전력이 전혀 소모되지 않는 TV를 내놓았다.

 또 인버터방식의 고효율 압축기와 자체 개발한 제어회로를 탑재해 월전력소모량을 36∼42㎾수준으로 낮춘 500∼680ℓ급 인버터냉장고도 선보였다.

 LG전자도 지구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CFC) 대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냉매를 사용하면서도 자체 개발한 최첨단 인버터기술을 적용해 압축기 가동시간과 속도를 최적 상태로 자동조절함으로써 월소비전력을 39㎾ 정도로 낮춘 680ℓ용량의 인버터냉장고를 출시했다.

 또 절전시 0.2W밖에 소모되지 않는 VCR와 전원을 내렸을 경우 전력이 2.7W밖에 들지 않는 모니터를 출시했다.

 특히 하반기부터 다양한 용량대의 냉장고를 비롯해 다양한 절전형 제품을 추가로 출시, 앞으로 절전효율 등을 높인 친환경적인 제품을 주력제품으로 육성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빅딜 파문에 휩싸인 대우전자가 경영정상화를 위해 내놓은 첫번째 야심작이 바로 절전형 냉장고다. 대우전자는 절전기능 제품을 최대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다는 전략으로 400ℓ 이상급 99년형 냉장고의 월소비전력을 모두 기존제품의 절반수준인 36∼42W 정도로 낮추고 연간 9855W를 절감할 수 있는 세탁기를 출시해 대대적인 판촉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처럼 가전업체들이 절전제품에 주목하는 것은 일단 지난 4월부터 절전제품에 대해 공공기관에서 우선 구매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발표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 IMF 이후 일반가정의 경제상황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한푼이라도 절약하자는 소비자들의 심리와 함께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작은 행동의 하나로 같은 성능을 발휘한다면 되도록 전기사용을 줄일 수 있는 가전제품들을 선호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즉 기업입장에서는 절전제품 출시를 통해 IMF 이후 절약을 최대의 미덕으로 삼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매출을 확대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에너지절약을 통해 환경을 보호하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 개선 등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실제 정부는 절전형 제품의 보급촉진을 위해 단일구매처로는 최대인 공공부문에서 절전형 제품을 우선 구매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절전형 사무용기기 및 가전기기 보급촉진제도」를 마련, 지난 4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컴퓨터와 복사기 등 사무용 기기에 대해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자동적으로 절전모드로 변환되도록 하고 TV와 비디오 등 가전제품이 대기시(리모컨으로 끈 상태) 소비전력이 최소화될 경우 공공기관이 우선 구매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전기를 적게 소모하는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에너지 자급도는 고작 3% 정도. 지난해는 에너지 수입에만 275억달러를 사용함으로써 총수입액의 18.8%를 에너지를 수입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국내의 모든 제품이 절전형으로 바뀌면 61만㎾급 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발전소 1기를 건설할 수 있는 규모인 연간 3500억원 상당의 전력(5374GWh)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우리 정부가 절전형 제품의 개발과 사용을 위해 이처럼 법적인 근거를 마련했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시기상 뒤늦은 것은 물론 그 내용면에서도 크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에너지 사용을 합리화한다는 취지 아래 「가전 재상품화법안」과 「에너지절약법안」을 마련해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새 에너지절약법안에 따르면 가전제품 제조업체들에 대해 TV의 경우 2003회계연도 전력소비량을 지난 96회계연도 기준 17.24%, 에어컨의 경우 50%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새 에너지법안이 통과돼 시행될 경우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들은 명단공개 등의 처벌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앨 고어 부통령이 세계 주요 가전업체 관계자들과 만나 절전형 TV와 VCR를 생산해줄 것을 요청,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정부 최고위 관계자까지 직접 나설 정도로 절전형 제품 개발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절전제품을 포함한 에너지절약에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곳이 유럽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이미 80년대부터 에너지절약과 환경보호를 겸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 생활방식을 국가 차원에서 홍보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한 다양한 법안을 마련, 시행하고 있다.

 이같은 선진국들의 절전제품에 대한 관심은 이제 자국뿐만 아니라 수입제품에 대한 규제로까지 확산돼 절전에 대한 규제가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부각될 정도다.

내 가전제품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유럽 등 선진국에서 지구환경 보호 정책과 연계해 절전기술의 채택을 의무화하고 적정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아예 수입을 금지하는 추세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너지절약을 위한 절전기술이 개발되지 않을 경우 이들 선진국으로의 수출이 원천적으로 봉쇄돼 수출의존도가 갈수록 심화되는 국내 가전산업은 존립기반을 상실할 수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유럽연합(EU) 집행위가 마련한 「에너지절약프로그램」과 미국 환경보호국(EPA)의 AV 관련 제품에 대한 소비전력을 규제하는 「에너지스타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EU는 지난해 유럽지역에 판매되는 TV와 VCR에 관한 에너지절약프로그램을 마련, 오는 2000년 1월부터 본격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리모컨을 사용하는 TV와 VCR의 경우 2000년 1월부터 전력사용량이 평균 6W를 초과하지 않고 대기상태에서도 10W를 초과하지 않는 제품만을 판매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제정된 미 「에너지스타프로그램」도 취지는 EU의 에너지절약프로그램과 마찬가지다.

 이것도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가전제품인 TV와 VCR 등 AV기기의 사용대기중 소비전력을 규제하기 위한 것으로 가입이 강제규정은 아니지만 회원으로 가입했을 경우 반드시 자체규정을 준수하도록 돼 있다.

 그렇지만 「에너지스타프로그램」에 가입할 경우 에너지절약형 제품이라는 표시를 나타내는 에너지스타 로고를 제품에 부착하거나 광고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또 공공기관인 EPA가 회원명단을 공개하는 등 자체적으로 각종 소비자단체나 일반소비자들에게 실시하는 마케팅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제품 이미지를 크게 높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AV기기뿐만 아니라 냉장고와 세탁기 등 가정용 전기기기(일명 백색가전)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지난 87년부터 냉장고·에어컨·세탁기 등 가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가전기기에 대해 최저 에너지 소비효율기준(NAECA)을 제정해 제조업체가 일정한 기간에 법적인 기준을 충족하도록 하고 있으며 2001년 7월부터는 규제치를 기존에 비해 30%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유럽지역도 올해 9월부터 에너지효율 C등급을 초과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판매를 규제한다는 것이다.

 결국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절전기능을 갖추지 않고서는 가전제품의 현지판매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전자3사가 절전기술 개발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도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제품판매를 위한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인 셈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EU규격을 제정하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미 에너지스타프로그램에 가입한 것은 환경을 보호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이미지 쇄신은 물론 이를 통한 매출확대가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80%를 해외에서 올리고 있는 국내 가전업계에 절전기술의 개발이 곧바로 기업의 존폐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앞으로 절전을 위한 기술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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