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통신기업 "모토롤러" 성장 전략

 다국적 통신기기업체인 모토롤러. 이 회사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21개국에 주요 생산시설을 갖고 있다. 영업판매망은 전 세계에 있고 종업원수는 13만3000만명에 이른다. 생산품은 휴대폰·무선호출기·무전기 등 통신기기에서부터 각종 반도체, 방위산업, 우주통신 장비, 전장품,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정보 처리시스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외형적으로 봐서 이 분야에서 경쟁할 만한 업체는 거의 없다. 하지만 모토롤러는 지난해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하는 등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이러한 와중에서도 연매출액의 10% 정도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고 새로운 통신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하면서 지금은 고속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모토롤러의 성장전략을 미국 현지취재를 통해 분석해 본다.

<편집자>

<현장취재>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근교 샴버그에 있는 모토롤러 전자박물관. 이곳은 모토롤러 역사의 현장이다. 500여평의 이 박물관은 모토롤러의 창업자인 폴 갈빈(Paul Galvin)이 지난 1928년 시카고 소형 정류기회사인 스튜어트 축전기 회사를 인수해 모토롤러를 세우면서부터 최근의 성장모습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그동안 모토롤러가 생산·판매해 온 휴대폰·무선호출기·무전기 등 각종 통신기기를 비롯해 통신기반 시스템, 각종 마이크로프로세서, 방위산업, 우주통신, 통신부품, 자동차 전장품, 데이터 커뮤니케이션 제품들이 총망라돼 있다.

 『모토롤러는 미국의 전자 통신기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요.』 모토롤러 전자박물관을 둘러본 사람이라면 이곳 가이드의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모토롤러는 1930년대에 자동차용 라디오를 처음 개발했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군사통신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 휴대형 핸디토키(HandieTalkie)·워키토키(WalkieTalkie) 등의 무선통신기기를 선보여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고체전자공학연구소를 설립해 반도체 기초기술 기반을 마련했으며 1950년대 말에 애리조나주에 반도체공장을 설립하면서 반도체사업에도 나섰다. 1960년대에는 미국의 우주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많은 우주선의 통신장비와 설비를 개발하고 1970년 중반에는 그동안 사업의 한 분야로 주력해오던 컬러TV·오디오 기기 등의 가전사업을 과감히 정리했다. 그 대신 기술집약도가 높은 통신산업 분야에 경영력을 집중하면서 지금까지 세계적인 통신기업으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모토롤러 전체 규모는 미국에서 34번째. 지난해 매출액은 293억9800만 달러로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기업 중 34위에 랭크됐다. 하지만 전자통신기기산업분야에서 그 위치는 3위에 올라 있다. 1위와 2위는 1004억 달러의 제너럴일렉트릭과 301억4700만 달러의 루슨트테크놀로지가 차지했다. 모토롤러에 이어 레이시온·이머슨일렉트릭·허니웰 등 쟁쟁한 기업들이 순위를 이어갔다. 통신기기업체만 본다면 단연 1위다.

 하지만 모토롤러는 이러한 외형과 달리 지난해 경영실적은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매출은 전년 297억9400만 달러에 비해 1% 정도 떨어졌고, 그동안 순익기조를 유지해 오던 순이익지표가 처음으로 마이너스성장으로 돌아서 9억6200만 달러의 손실을 봤다. 경영지표를 보면 분명 심각한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그러나 모토롤러는 이러한 위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모토롤러는 왜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가. 모토롤러가 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뒤에는 다른 업체들은 따라하기 어려운 모토롤러의 남다른 「전략」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 핵심의 경영전략을 보면 첫째 「고객을 최고로 여기는 총체적 고객만족을 실현하겠다」는 정신이다. 모토롤러는 고객에게 최대 만족을 주는 경영전략의 하나로 100만개의 제품생산에서 3.4개 미만의 불량률을 목표로 하는 6시그마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고객이 만족하는 품질의 제품을 만들지 않고서는 고객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알버트 R 브래시어(Albert R Brashear) 기업홍보업무담당 부사장은 『모토롤러는 6시그마운동을 생산공정뿐 아니라 조직의 모든 관리시스템과 서비스 전분야에까지 적용해 잘못된 제품이나 관리시스템의 착오로 유발되는 경영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모토롤러는 고객만족을 실현하기 위해 6시그마운동 이외에도 「5NINES(99.999%)의 고객서비스 운동을 실시, 고객의 마음에 드는 서비스를 실현하고 각종 문서에 고객이 결제하는 난을 비워 놓을 정도로 정말 고객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경영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모토롤러는 이런 전략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고객들의 호응을 받으면서 각종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선호도가 더욱 높아지고 매출도 늘어나고 있다고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두번째는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이다. 모토롤러의 연구개발투자비는 연간 매출액의 10% 정도다. 이는 미국 업체들의 평균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지난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29억 달러의 거액을 신제품 개발과 기술개발에 투자했을 정도다.

 사실 심혈을 쏟은 연구개발끝에 내놓은 모토롤러 제품들은 그때마다 세계 통신기기산업의 지평을 넓혔다. 1943년 개발한 워키토키는 당시 세계최고의 제품으로 평가받았으며 56년에 선보인 소형무선호출기 이른바 「페이저」는 세계 통신기기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미래기술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기술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시장에 내놓을 수 없어도 미래시장을 겨냥해 제품개발을 꾸준히 해야 한다.』-리서치래버러터리 데이비드 E 보스(David E Borth) 부사장.

 모토롤러는 이러한 전략에 따라 첨단기술을 이용한 야심작을 준비하고 있다. 이동중에 단말기 액정화면을 통해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통화하는 것은 물론 간단한 문서를 세계 어디로든 보낼 수 있는 단말기를 개발, 2000년 상용화를 목표로 제품신뢰도를 테스트중이다.

 이 회사는 이에 앞서 200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인터넷의 동영상을 구현할 수 있는 무선케이블모뎀을 조만간 시장에 선보일 계획이고 휴대폰과 전자수첩을 따로 사용하면서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개인의 정보관리는 물론 전화통화를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는 스타텍 모빌오거나이즈를 6월에 출시할 예정이다.

 모토롤러의 연구개발에 대한 열정은 특허건수에서 잘 나타난다. 지난해 모토롤러의 특허 획득건수는 모두 1428건으로 IBM·휴렛패커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연구개발의 집중투자」가 경영이념의 하나이니 모토롤러 제품의 품질이나 기술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다.

 세번째, 통신제품분야의 경영력 집중이다. 그동안 모토롤러는 사업부문이 방대하고 다양해 이들 부문간 발생하는 갈등으로 인해 업무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졌었다. 특히 고객들은 해당 사업부서와 일일이 개별 접촉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었다. 이에 따라 모토롤러는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모토롤러는 바로 이러한 점을 고려해 지난해 대규모의 리스트럭처링을 실시해 총매출액의 62%를 차지하는 휴대폰 무선호출기, 이리듐 저궤도 위성통신사업 등 7개 부문을 모토롤러 커뮤니케이션 엔터프라이즈(MCE)로 통합, 업무효율화에 나섰다. 통신사업의 통합을 통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고 토털솔루션 제공으로 통신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입지를 높인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토롤러는 「무선통신제품의 선도자(Leaders in Wireless Product)」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멀티서비스네트워크 디비전(MND)의 릭 레인(Rick Lane) 부사장은 『최근 인터넷시대를 맞아 데이터 처리량이 많아지고 처리속도도 빨라지면서 고객들의 토털솔루션 제공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 부응하기 위해선 각종 통신장비 시스템통합 솔루션 등을 종합적으로 취급하면서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영업활동을 하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세계적으로 시장이 커지고 있는 인터넷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방식 이동통신을 기존사업과 연계해 키우기 위해 통신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회사 명성에 걸맞은 종합적 마케팅전략의 구사다. 모토롤러는 상품판매를 확대하기 위해 회사내 다른 상품끼리의 상호 이미지부각 효과를 극대화해 시너지효과를 높이고 있다. 개인정보관리의 효율화를 위해 전자수첩기능을 첨가한 휴대폰 스타텍 모빌오거나이즈를 개발한 것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또 세계 각국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별도로 개발하면서 수요를 늘려 나가고 있는 것도 모토롤러 특유의 마케팅전략 중의 하나다. 이 회사는 전세계 32개국에 있는 51개의 자회사 소속 직원들을 모두 현지인들로 뽑고 그 나라 소비자의 입맛, 독특한 풍토에 맞는 제품개발과 마케팅전략을 구사하도록 하고 있다.

 『고객들의 성향은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단일제품으로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 따라서 제품의 디자인이나 색상, 모양은 물론 유통채널 방식도 국가별 특성에 따라 차별화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키스 매코넬(Keith McConnell) 아시아 셀룰러 그룹 제품기획 매니저.

 모토롤러의 이러한 전략은 적중했다. 그동안 삼성전자를 통해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이 초소형·초경량의 휴대전화를 선호한다는 점을 파악하고, 국내 단말기생산업체인 팬텍을 인수해 국내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제품을 생산해 최근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아날로그 단말기시장에서 보였던 그 명성을 되찾아 가고 있는 것이다.

 모토롤러가 우리나라의 팬텍을 인수해 놓고도 회사이름을 바꾸지 않는 것도 마케팅전략의 하나다. 즉, 모토롤러라는 세계적인 통신기업의 이미지에 팬텍이라는 현지기업의 이미지를 얹어 제품판매에서 시너지 효과를 노린다는 것이다. 현지인들의 구매를 이끌어내기 위해 세심한 것까지 신경을 쓴다는 얘기다.

 아무튼 이같은 네 가지 전략으로 무장한 모토롤러는 지난해의 부진을 씻고 올해는 동종업종에서 경쟁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강해질 것 같다.

 『앞으로 모토롤러는 정보, 음성, 데이터통신 제품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기술을 선도하면서 고객들의 요구를 만족시켜 주는 기업이 될 것』이라는 릭 레인 부사장의 말은 빈 말이 아닌 듯 싶다.

<금기현부장 khku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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