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벤처기업 (85)

 그녀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었는데 방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그대로 서서 아래층 거실로 내려와서 차를 한 잔 마시라고 했다. 자신도 잠이 오지 않아서 그런다고 변명을 했다. 그때 그녀의 변명이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게 들렸는지 알 수 없다. 이 여자가 참 외로워하는구나 하는 동정심이 일어난 것이 바로 그때였다.

 그녀의 남편 김 회장은 하고 있는 사업이 너무 바쁘다. 나는 김 회장이 집에 머무는 동안 대사업가의 일과가 얼마나 분주한지 알 수 있었고 결국 가정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것을 알았다. 내가 입주해 있는 한 달 동안에도 김 회장과 마주친 것이 세 번 정도였다. 그는 집에 올 경우도 밤 늦게 들어오고 아침 일찍 나갔다. 아침 식사도 집에서 하는 일이 없이 무슨 조찬 기도회나 무슨 조찬 모임, 또는 조찬 세미나까지 참석하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세미나를 한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그의 수행비서 수첩을 보면 한 달 후의 저녁식사 스케줄까지 모두 예약돼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젊은 아내는 청상과부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돈과 명예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것으로 안되는 것이 있다. 그러나 대사업가의 아내는 그 희생을 감수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홍 박사는 그 희생을 감수하기에는 너무 젊고 욕망이 강했다. 그것이 생리적인 것일지라도 강한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그녀는 사회적인 위치와 지위 때문에 함부로 애인을 만들 수도 없는 눈치였다. 그럴 바에는 나같은 영계를 애인으로 두면서 욕망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기에는 너무 젊어서 부도덕한 일에 쉽게 빠져지지를 않았다.

 그런데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녀가 노골적으로 유혹해온다면 내가 그것을 뿌리칠 수 있을까. 굳이 뿌리칠 필요가 있을까. 남의 부인과 간통을 해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다는 간통죄로 피소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내가 두려워한 것은 그런 법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부도덕한 일 자체를 저지를 수 있는 용기가 부족했던 것이다. 어쨌든 두려움과 기대를 가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거실 한쪽 탁자 위 커피포트에서 물이 끓고 있었다. 내가 내려가자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건성으로 대답을 했지만 내가 내려올지 확신이 없었던 눈치였다. 그녀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그녀가 얼마나 외로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외로움을 강조하는 것은 그녀의 부정을 합리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실제 그녀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무척 외로워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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