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전자상거래> 기업간 거래 현주소

 컴퓨터업체로는 세계 최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컴팩사는 자사의 PC를 판매할 때 아예 주문부터 인터넷을 통해 받고 있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할 때 인터넷 EDI를 이용하도록 하고 있어 EDI 수단을 통하지 않고서는 제품을 구매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유통에 따른 제반 비용을 없앤 이같은 거래방법이야말로 오늘의 컴팩이 있게 한 요인이었다.

 컴팩의 성공사례는 인터넷의 드라마틱한 역동성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것은 또 지구상의 어떠한 기업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한 전자거래를 준비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2∼3년 내에는 국제 비즈니스장에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한 예에 불과하다.

 조만간 전자상거래를 통하지 않고서는 부품을 공급받을 수 없어 제품을 만들 수도 없게 되며, 인터넷 상에서 이뤄지는 입찰에 대응하지 못해 판로마저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내 기업들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이같은 전자거래체계의 중요성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기업간 전자상거래(CALS/EC) 구현작업을 제쳐두고 있는 실정이다.

 CALS/EC협의회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 대부분은 기업간 정보공유를 실현하기 위한 마인드가 형성돼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 차원의 정보기술(IT)을 토대로 한 경영혁신(BPR)을 꾀한 기업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IMF사태 이후 더욱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경기불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 작업으로 인해 기업들의 이합집산 사태가 동시다발로 한꺼번에 몰아치면서 대기업·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전자상거래에 대한 투자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추진중인 사업계획마저도 무기한 연기되거나 포기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더 이상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목전의 목숨부지에 급급하다 보니 당장 피부에 와닿지 않는 전자상거래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는 셈이다.

 물론 IMF사태가 빚어지면서 궁지에 몰린 몇몇 업종의 기업들은 각종 비용절감을 통해 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동종 업종 기업간의 CALS를 구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ELECTROPIA」로 국내 전자4사가 부품공유에서부터 각종 정보교류에 합의하고 25억원을 투자해 별도법인화해 전자업종 CALS 구현을 목표로 출범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간의 빅딜이 구체화되면서 조기사업화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우려된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세계는 우리 기업들의 이같은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고 디지털 경제체제로의 행보를 급속히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인 OECD는 지난해 11월 핀란드에서 열린 회의에서 조세·소비자보호·전자지불 등을 포함한 전자상거래를 주제로 포괄적으로 논의, OECD 업계자문위원회(IAC) 명의로 전자상거래 확산을 위한 10대 원칙을 선언했으며, 지난 10월 오타와 OECD 각료회의에서는 범세계적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한 일반적 합의와 주요 지침 채택 및 실행계획을 구체화했다.

 미국은 지난해 7월 1일 클린턴 대통령의 「범세계 전자상거래를 위한 기본틀(A Framework for Global Electronic Commerce)」의 발표로 전자상거래에 대한 본격적인 국제적 논의에 불을 댕겼으며, 그해 12월 미국은 유럽연합(EU)과의 정상회담에서 전자상거래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특히 미국은 올들어 전자상거래에 관한 기본원칙을 세우는 작업에 착수, 지난달 초 전자상거래에 관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다룬 미정부의 연례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EU도 지난해 4월 「유럽의 전자상거래 전략」을 채택해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전자상거래에 대한 공동전략을 마련했다. 또 그해 7월 독일의 본에서 독일과 유럽위원회가 공동으로 「세계 정보네트워크」에 대한 EU 각료회의를 개최하고, 사용자·업계·정부 각 부문의 선언문(Bonn Declaration)을 채택하기도 했다.

 일본도 우정성에서 사이버비즈니스협의회·전자우편협의회와 공동으로 EC공통 플랫폼 개발 프로젝트인 INGECEP를 추진하고 있고 통산성에서는 ECOM을 통해 전자상거래 추진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각료회의에서 경제구조의 변혁과 창조를 위한 행동계획을 발표하고 고도정보통신추진본부 내 관련부처가 참여하는 전자상거래검토반을 구성했다.

 통산성은 또 지난해 5월 「디지털 경제시대를 향하여」라는 EC 정책방향 초안을 발표했고, 지난달에는 전자·자동차·섬유·철강·전력 등 11개 업종에 대한 기업간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예산 지원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일본은 내년에도 이 사업을 위해 약 5백억엔의 예산을 책정했다.

 세계 각국이 이처럼 급속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IMF사태 이후로 최대의 현안인 경제난 극복에 매달려 있다 보니 국가적 차원의 전자상거래 체계구축은 뒷전이 되고 말았다. 국가 경제난과 기업 경영자들의 전자상거래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발목이 잡힌 셈이다.

 다행히도 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 4일 청와대 경제대책회의에서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 정부조달법을 개정해 조달부문의 거래를 전자거래로 의무화하고 군수·공공기업의 조달부문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기업간 전자상거래 체계를 구축하고 정착시켜 나가는 데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아닌 기업들의 낮은 정보화 수준과 기업간의 정보화 편차, 정보유출 기피로 인한 시스템 구축의 비협조, 비대면거래 기피 등 문화적 장애요인을 들 수 있다. 이를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는 민·관 공동노력으로 국가사회 전반의 조속한 사이버화를 추진해야 한다.

 또다른 장애요인으로는 기업의 정보공개 기피에 따른 동종 업종 단위의 전자상거래 기반구축의 어려움과 산자부가 2년 전에 시행한 시범사업 등에서 가시화된 성과가 없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가뜩이나 투자를 기피하는 기업체들로서는 당장의 눈앞에 보이는 효과가 없는 CALS체계 구축에 선뜻 투자하려 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정부가 적절한 대응과 활성화정책을 내놓고 있지 못한 것도 지적할 수 있다. 특히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유인정책을 내놓아야 할 정부는 「전자상거래에 관한 한 민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국제간 논의기조에 얽매여 이렇다 할 대책을 자발적으로 내놓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다.

 게다가 업종별·사안별로 담당하는 조직이 부처별로 분산돼 있어 업무가 비효율적이며, 추진력 자체도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정부조달 및 군수조달·공기업조달부문을 전자조달로 의무화해 기업들의 전자상거래 기반구축을 강제적으로 유인하는 한편 제도정비를 통한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꾀해야 한다.

 기업들도 전자상거래체계 도입을 통한 기존의 업무프로세스와 노하우·거래관행·이해관계를 완전히 뒤엎는 BPR를 추진하고 기본인프라로 기업 내 정보화를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

 또한 전자상거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업종 단위의 기반구축이 필수적인 만큼 기존 경쟁업체와의 전향적인 협력이 요구된다.

 이제 기업간 전자상거래 실현을 위해 박차를 가하지 않는 한 우리가 IMF로부터 벗어날 것으로 기대하는 2∼3년 후에는 우리가 1년 전부터 맛보아온 IMF사태보다 더 큰 시련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가 세계경제가 걷고 있는 디지털 경제체제로 동참하느냐, 아니면 영원한 낙오자로 남느냐는 지금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근우기자 kwk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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