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형
올해 국내 중대형 컴퓨터산업은 격변의 한해로 요약된다. 중대형 컴퓨터업계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 따른 사상 유례없는 경기침체와 기업들의 전산투자 위축에 따른 수요급감에 시달리면서 사상 최악의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전자·삼성전자·LG전자·대우통신 등 주전산기4사의 경우 기업 구조조정과 극심한 내수부진으로 사업을 통폐합하거나 축소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국내 주전산기사업을 주도해온 현대전자는 그룹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중대형 컴퓨터사업을 현대정보기술(HIT)로 전격 이관하고 미국 자회사인 액실컴퓨터를 정리하는 등 업계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이같은 현상은 비단 현대전자뿐만 아니라 삼성전자·LG전자 등 주요 주전산기업체 전반으로 확산됐다. 삼성전자는 중대형 컴퓨터 관련 서비스 조직을 관계사인 서울통신으로 이관하는 동시에 대규모 영업인력을 삼성SDS로 보냈으며 LG전자도 올들어 몇차례에 걸쳐 중대형 컴퓨터사업부에 대한 인력을 대폭 축소했다.
이런 영향으로 지난 11월 시제품 발표회를 가진 국산 대형컴퓨터(일명 엔터프라이즈 서버Ⅰ)의 제품 상용화가 불투명해지면서 사장위기에 처하게 됐다. 또 엔터프라이즈서버Ⅰ의 후속사업으로 정부(산업자원부)가 추진할 예정이었던 차세대 대형컴퓨터 「엔터프라이즈 서버Ⅱ」의 개발도 전면 백지화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처럼 국산 대형 주전산기사업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정보통신부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국산 주전산기Ⅳ의 후속사업으로 진행중인 고성능 멀티미디어서버(MSC) 개발사업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여 국산 중대형 컴퓨터 개발사업은 더욱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에 따라 10여년간 추진해온 주전산기사업은 사업착수 10여년 만에 최대의 위기상황에 봉착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주전산기업체뿐만 아니라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중대형 컴퓨터업체에도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지난 7월 한국컴팩컴퓨터가 한국디지탈을 인수합병(M&A), 국내 중대형 컴퓨터업계의 판도변화를 예고했다. 올초부터 본사 차원에서 추진된 두 업체간 M&A는 세계 제1위의 PC업체와 세계 최고속의 알파칩을 자랑하는 중대형 컴퓨터업체간 통합이라는 점에서 전세계 중대형 컴퓨터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격변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중대형 컴퓨터업계는 사상 최악의 매출부진을 면치 못해 그 어느 때보다도 우울한 한해를 기록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국내 중대형 컴퓨터산업의 시장규모는 지난해 1조원 규모에 비해 30% 정도 줄어든 7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를 분야별로 보면 유닉스서버시장은 올해 약 3천3백9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6천5백60억원에 비해 48% 정도 감소한 수치다. 유닉스서버시장이 이처럼 큰 폭의 감소세를 나타낸 것은 경기침체와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따른 전산투자 위축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인다.
PC서버의 경우에는 최근 몇년간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나다는 강점을 무기로 연평균 1백%를 상회하는 고속성장세를 유지해왔으나 올해 처음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국내 PC서버시장 규모는 지난해 1천2백억원에 비해 33% 정도 수요가 줄어든 8백10억원 정도에 머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대형컴퓨터인 메인프레임은 시장규모가 오히려 늘어나 유닉스서버 등을 비롯한 중형 서버시장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국내 대형컴퓨터 시장규모는 2천4백60억원 정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시장규모 2천억원에 비해 23% 정도 증가한 것이다. 대형컴퓨터 시장규모가 전체 중대형 컴퓨터시장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성장세를 기록한 것은 대기업들의 유지보수비용과 컴퓨터 2000년 연도 표기(Y2k)문제, 시스템 업그레이드 등 신규수요가 발생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올들어 한국IBM을 주축으로 한 일부 메인프레임업체들은 메인프레임 가격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하드웨어 공급에 따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소프트웨어 사용료 등 유지비용을 인상해 저가의 하드웨어 가격을 보상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었다.
슈퍼컴퓨터 역시 메인프레임시장 상황과 유사한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내 슈퍼컴퓨터 시장규모는 3백50억원 정도로 지난해 2백40억원에 비해 46%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슈퍼컴퓨터시장은 전반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서 슈퍼컴퓨터 도입 프로젝트가 활발히 일어나면서 활기를 띠었다. 지난 상반기에 전북대학교가 지방대학교로서는 처음으로 슈퍼컴퓨터 도입 프로젝트를 추진한 데 이어 하반기들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슈퍼컴퓨터 도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IBM·한국후지쯔·한국실리콘그래픽스(SGI)·한국HP·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 슈퍼컴퓨터업체들간 수주권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따른 전산시스템에 대한 투자감소로 중대형 컴퓨터산업 경기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대형 시스템의 기술적 발전은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유닉스서버의 기술적인 추세는 지난해에 이어 64비트 시스템이 주력기종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프로세서 성능향상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됐다. 또 대부분의 유닉스서버업체들은 CPU의 경우 오는 2000년 하반기경에 선보일 인텔의 차세대 64비트 프로세서인 IA-64(일명 머세드)에 대한 지원전략을 공식화하고 있어 자사 고유의 프로세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유닉스서버업체들이 유닉스서버 고가용성(High Availability)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인 점도 주목된다. 여기에는 한국HP·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한국디지탈 등 주요 유닉스서버업체들이 가담해 자사제품이 최고의 성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 유닉스서버업체가 시스템 고가용성 문제를 강조하는 것은 이 점이 대형고객인 은행이나 증권업계 등의 기간업무용 시스템으로서의 채택여부를 가늠하는 잣대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국내 유닉스서버시장은 지난해부터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비균등 메모리접근(NUMA) 방식을 채택한 서버들이 올해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어 차세대 중형서버의 표준 아키텍처로 자리잡을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이처럼 NUMA시스템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시스템의 확장성이 뛰어나고 대칭형 멀티프로세싱(SMP)과 초병렬처리(MPP) 기법의 애플리케이션들을 모두 지원해 시스템 구축 및 유지보수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PC서버시장에서 올해 주목되는 변화 중 하나는 미국 인텔사의 차세대 펜티엄Ⅱ 프로세서인 「지온」칩을 탑재한 PC서버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삼성전자·한국컴팩컴퓨터·한국HP·LGIBM·한국후지쯔·한국유니시스 등 주요 PC서버 공급업체들이 펜티엄Ⅱ 데슈츠칩에 이어 지온칩을 4∼8개까지 장착할 수 있는 슬롯Ⅱ 방식의 PC서버 공급에 적극 나선 것이다.
지온칩 탑재 PC서버는 기존 펜티엄프로 제품군에 비해 프로세서와 입출력 성능이 두배 정도 향상돼 저가형은 물론 중급 이상의 유닉스서버시장을 침투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특히 앞으로 64비트 프로세서인 「머세드」가 출시될 경우 윈도NT서버는 유닉스서버급의 성능을 갖추면서 유닉스서버와의 한판승부가 흥미진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메인프레임부문의 경우 한국IBM이 업계 최초로 1천밉스(MIPS)의 장벽을 뛰어넘은 고성능 메인프레임 「S/390 G5」를 선보였다. 이에 맞서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도 IBM의 「S/390 G5」와 동일한 프로세서인 C MOS칩을 채택한 고성능 엔터프라이즈 서버 「파일럿 8」을 공급하는 등 메인프레임업체들간 시장쟁탈전이 뜨거웠다.
<컴퓨터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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